북한군 "저 놈들 왜 쏴?" 연평도 도발때 허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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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따른 남북 포격전은 어느 쪽이 이긴 싸움일까. 답하기 모호한 이 질문에 정부가 ‘승전(勝戰)’이라고 뒤늦게 유권해석을 내렸다. 지금까지는 도발이나 교전(交戰)이라는 표현을 썼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5일 “도발 2주년을 앞두고 당시 상황을 재조명한 결과 우리 군의 대응사격을 승전으로 규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해병대가 진행했던 희생자 추모행사와 기념행사를 올해부터 국방부와 보훈처가 주관할 예정이다. 전승 행사로 격을 높이기 위해서다.

 다만 군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는 용어는 계속 사용하기로 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우리 군이 정기 사격훈련을 마치고 K-9 자주포를 정비하는 시간에 북한군이 170㎜·240㎜ 다연장포 등을 동원해 170발의 공격을 감행했고, 이에 우리 군이 K-9 자주포로 무도와 개머리 진지에 응사했다.

 정부가 이 포격전을 2년 만에 승전으로 규정한 데엔 지난달 18일 이명박 대통령의 연평도 방문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당시 상황을 보고받은 뒤 “직접 와 보니 정말 잘 대응했다”며 “전승이네, (해병대의 대응을) 재조명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을 수행했던 한 당국자는 “휴가 나가던 장병들이 즉각 복귀하고 K-9 자주포 1개 대대(6문)에도 미달하는 4문으로 쏟아지는 북한군의 포탄 속에서 응사했다는 보고를 받고 대통령의 마음이 움직인 듯하다”고 전했다. 또 군 당국은 이 대통령에게 공격을 받은 지 13분 만에 응사한 것이 ‘늑장 대응’이 아니었다는 점도 설명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연평도 방문 이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오전 “연평도 포격 도발의 성격 조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북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중순 김정은은 목선을 타고 무도를 방문해 영웅칭호를 수여했다. 명시적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승전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무도 진지는 연평도 포격 도발 때 사격에 가담하지 못하고 우리 군의 대응 포격에 크게 피해를 본 곳이다. 우리 군이 쏜 K-9 포탄이 막사 근처에 떨어져 북한군 10여 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했다. 당시 북한 노동신문은 “우리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또 당시 무도 진지의 북한군이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 거야. 저 새끼들 왜 쏴?”라며 허둥대는 모습이 우리 측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의 무도 방문과 영웅칭호 수여를 놓고 “김정은에게 누군가 당시 상황을 허위 보고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론 남북의 군 통수권자들이 잇따라 연평도 전방 지역을 찾아 각자 승전을 주장하는 모양새가 됐다.

 정부의 승전 규정에도 불구하고 당시 부대원들에 대한 추가 포상은 이뤄지지 않는다. 사망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에겐 이미 화랑무공훈장이 주어졌다. 목숨을 걸고 싸운 생존 장병들에겐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해군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 표창이 전부다.

 한편 보훈처는 23일 전쟁기념관에서 기념식을 하고 전사한 서 하사와 문 일병을 추모한다. 국방부는 22, 24일 각각 전사자가 묻힌 대전현충원 참배와 연평도 위령탑 제막식을 한다. 해병대는 24일 당시 연평부대에 근무하다 전역한 예비역 해병들을 부대로 초청해 전승기념관 개관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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