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나의 삼식이 아버지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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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장 현
숭실대학교
언론홍보학과 4학년

며칠 전, 근 몇 달 만에 고향집에 들렀어요. 집에는 아무도 없더군요. 허전한 마음에 친구를 불러 가족끼리 종종 찾던 삼겹살집으로 향했습니다. 가족끼리 항상 앉던 그 자리에, 아들 하나 데리고 온 다른 집이 눈에 띄더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저와 친구가 자리를 비울 때까지도 단 한마디 말이 없는 거예요. 옆에 앉은 제가 다 목이 멜 정도로 무서운 침묵이었습니다. “다 먹었느냐.” “네.” “가자.” 그들 부자가 한 시간여 동안 나눈 대화는 고작 세 마디.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를 뿜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고, 고개를 숙인 채 헛수저질만 반복하는 아들은 처량해 보였지요.

 정년퇴임이 가까운 베이비붐 세대가 800만 명이 넘죠. 그날 그 아버지뿐이겠어요. 그 부자가 원체 과묵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베이비붐 아빠를 둔 보통의 가족들이 어색한 침묵을 저녁밥과 함께 씹어 삼키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아버지, 당신께서도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실 거예요.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명예로운 퇴직’의 후광도 찾아볼 수가 없네요. 끊어진 밥줄 앞에 걱정 어린 시선을 먼저 보내야 하는 사랑하는 가족. 일면 배은망덕하고 불효막심한 그들을 이해하고 섭섭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세요. 아버지의 땀과 눈물 속에 살 수 있었던 우리는 왜 당신께 뜨거운 박수보다 우려의 눈총을 먼저 보내고 있을까요.

 문득 기억나는 유년기의 한겨울 새벽. 당직근무에 졸린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서던 아버지를 비몽사몽간에 배웅하던 제가 있었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무섭게 들이닥치던 알싸한 한기에 어린 맘에도 ‘아빠는 참 불쌍하게도 이 추운 날 일을 하시는구나’ 싶었어요. 겨울은 춥고 긴긴 밤은 어두웠지만 환하게 불 켜진 저녁 식탁 위에는 항상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흰쌀밥이 있었지요. 이제 바야흐로 세끼 모두 따뜻한 집에서 드실 수 있을 날이 머지않은 듯해요. 당신의 노고가 만든 이 푸짐한 밥상을 보세요.

 삼시 세끼를 집에서 눈치 보며 먹는 이 시대의 아버지를 ‘삼식이’라고 하더이다. 말이 참 가볍습니다. 그동안 당신이 짊어진 육중한 삶의 무게도 ‘삼식이’란 세 글자가 가볍게 비웃고 마네요. 한없이 든든했던 당신의 이미지가 지금 제 머릿속에서 자꾸 의문을 던집니다. 왜 나의 아버지는 삼식이여야 하는가. 그의 인생은 이런 농담 섞인 별명과 눈칫밥을 위한 것이었는가. 그래서 말이죠, 조만간 다시 집으로 가려고요. 이제 퍽 주름이 깊어진 당신의 눈가를 보며, 모처럼 온 가족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잊혀진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려 합니다. 삼식이가 아닌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워 드릴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좋겠어요. 사랑하는 나의 삼식이 아버지.

장현 숭실대학교 언론홍보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