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사자 했더니 학교는 “주판 쓰면 될 걸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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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인을 노예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고등교육기관 설치를 하나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를 때 갖은 악랄한 짓을 했습니다. 전쟁터에 끌고 가고 정신대를 동원하고….”

 1983년 2월 최덕경(당시 65세) 전 고려대 의대 교수는 퇴임하면서 일제 강점기 때 체험을 들려주며 후배 교수와 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는 38년 한국 최초의 여성 의과대학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1기로 입학했다. “여자도 전문지식을 익혀야 조국 독립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경성여자의대는 71년 고려대 의대에 병합됐다. 올해 아흔네 살인 최 전 교수는 노환으로 현재 의식불명 상태다. 후배인 이현금(91) 전 고려대 의대 교수는 “당시 교수님의 퇴임사에는 어렵게 공부했던 시절을 잊지 말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고려대가 개교 107주년 맞아 생존 교수 70여 명의 퇴임사 모음집인 『이유록(二有錄·사진)』을 출간한다. 유교 경전 『대학(大學)』에 나오는 ‘물유본말사유종시(物有本末事有終始:세상사엔 처음과 끝이 있다)’라는 경구에서 따온 제목이다. 교수 생활의 시작과 끝을 돌아본다는 뜻이다. 격동의 시기에 교수 생활을 한 77명의 퇴임사에는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 과정, 민주화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의 단편들이 담겨 있다.

 김덕진(79) 전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는 99년 퇴임사에서 “71년 학교에 컴퓨터를 도입하자고 했다가 ‘주판으로도 다 해결할 수 있는 걸 왜 사느냐’며 거절당했던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당시에는 학교에 ‘주판부대’가 있어 입시철에 쏟아지는 계산 업무를 모두 손으로 해결했다. 대학 중 서울대·숭실대·중앙대만 컴퓨터를 도입했을 정도로 일반인에게 생소한 물건이었다. 그래도 김 전 교수는 대학본부를 설득했다. 결국 73년 미국 IBM사로부터 한 달에 당시로선 거금인 2000달러를 내고 컴퓨터를 빌려왔다. 임차료를 메우기 위해 정부 기관에서 일감을 따와 컴퓨터를 돌렸다고 한다.

 2006년 퇴직한 정광(72) 전 국문과 교수는 사촌형인 천주교 정진석(81) 추기경이 일본 대학행을 막은 사연을 들려줬다. “일본 데즈카야마 대학에 자리가 났는데 추기경께서 ‘가톨릭대학에서 봉사해 달라’고 만류하더군요. ‘외화를 벌어야죠’라며 반박했는데 ‘돈은 천국에 저금하라’는 말에 꼬리를 내렸습니다.”

 김순자(78) 전 간호학과 교수는 퇴임사에서 “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도 나는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의실에서 나가 시위에 참가하려는 학생들에게 ‘국가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강의를 꼭 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며 시위로 급박했던 당시 대학 상황을 회고했다.

 주남철(74) 전 건축학과 교수는 2004년 퇴임하면서 “지금 대학에는 직장인인 ‘교수’와 강의를 수강하는 ‘학위취득자’만 있을 뿐”이라며 ‘취업학원’으로 변질되는 대학 현실을 비판했다.

 고려대 김병철 총장은 20일 축사에서 “『이유록』은 감동적인 장면들을 모아 놓은 사진첩 같은 책”이라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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