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잃지 마세요! 치킨집을 배달해 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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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세 가정에 '희망의 선물'이 배달됐다.

▶ SBS 프로그램 <해결! 돈이 보인다>

4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마의 잉어빵 포장마차를 지키는 12살의 효자 정훈이네 가족, '상하악 골종'이라는 희귀병이 아버지에 이어 딸에게까지 유전된 아연이네 가족, 끊임없이 이어지는 항암치료와 약물치료 등 '급성림프성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지헌이네 가족.

이들은 SBS 프로그램 '해결! 돈이 보인다'가 가정의 달을 맞아 마련한 특집방송에서 '사랑의 가게'를 선물 받는다. '대박집' 사장의 도움을 받아 '쪽박집'에 성공 노하우를 전달해왔던 이 프로그램은 이번 특집방송에서 농협의 지원을 받아 딱한 사정의 이 세 가정에게 치킨집을 마련해준다. 음식장사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은 조리는 물론 영업 노하우 등 빡빡하고 힘든 일정의 합숙교육을 소화해냈다.

담당 김인수 PD는 "1만건 이상의 제보 중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가게 조차 없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하던 중 가정의 달을 맞아 가장 딱한 사정에 놓여 있는 세 가정에 점포를 마련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특집방송은 18일과 25일(저녁 7시 5분) 두번에 걸쳐 방송된다.

특히 자신의 희귀병이 딸 아연이에게까지 유전된 이영학 씨는 극심한 생활고로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하자 세 가족의 동반자살까지 결심했었지만, 이번에 찾아온 행운을 계기로 삶의 희망을 찾았다.

담당 고희경 작가는 " '24년을 사는 동안 하늘은 나에게 단 한번의 희망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이영학 씨의 말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며 "방송을 촬영하면서 이들끼리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하악 골종'이란 희귀병이 아버지에 이어 딸에게까지 유전된 아연이네 이야기

"내 자식까지 이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아연이만큼은 앞니로 밥을 먹는 것이 소원입니다."

아래턱과 위턱을 포함해 코언저리가지 종양이 생기는'상하악 골종'을 앓고 있는 생후 20개월의 아연이와 아빠 이영학씨(24.서울 중랑구 중화동). 이 병은 이영학 씨로 인해 처음 학계에 알려진 병이며 아직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수 차례에 걸친 수술과 성형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열 살 때 구강에 작은 혹이 생겨 처음 병원을 찾은 영학씨는 유례없는 이 병으로 10여년의 세월 내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턱 밑으로 불룩하게 불거진 혹 때문에 한창 감수성 어린 나이에 친구들에게 병신이라는 놀림에 시달렸던 그는 대인기피증에 걸릴 정도였고,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그는 지금껏 직장생활도 3개월 이상 해 본 적이 없다.

천신만고 끝에 스무 시간의 대수술을 다섯 차례 받고 희망을 꿈꿀 무렵,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더 이상의 수술을 포기해야만 하는 절망적 상황에 처하게 된 영학씨는 열일곱 나이에 부모님과도 떨어져 형제들끼리만 살기 시작했고, 집에 전기가 끊기고 3일동안 한 끼만 먹는 등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외롭게 살아왔던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3년 전 아내를 만나 딸 아연이를 낳고 풍족하진 않아도 가까스로 안정을 찾아가던 영학씨였다. 생전 처음으로 행복감을 맛본 것도 잠시.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졌다. 턱에 생채기가 났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던 아연이가 아빠와 똑같은 '상하악 골종'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더구나 아연이는 눈까지 종양이 퍼져 더욱 심각한 상태였다.

아연이의 병을 알게 된 그 날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 알기에 다같이 죽을 결심까지 했다는 영학씨.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SBS '해결 돈이 보인다'에 제보를 했다. 5, 6년 후면 아연이의 종양 제거 수술과 성형을 시작해야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큰 수술비에 막막할 따름인 자신에게 어떻게든 살아갈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아연이네 가족에게 희망의 꽃이 피어났다.

#아름다운 효자 소년 정훈이네 이야기

열두 살의 정훈이(서울 청량초 5년)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잉어빵 노점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어린 몸으로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의 경희대 앞 포장마차까지 1.5ℓ 페트병 10개에 물을 준비해 손수레에 싣고 다니는가 하면, 직접 잉어빵 배달을 다니기도 한다. 어린 정훈이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엄마를 돕기 위해서다.

지금은 헤어져 살고 있는 아빠가 5년 전 증권투자에 크게 실패하면서 엄마 한안순(39.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씨는 포장마차를 시작해야 했다. 낮에는 병원 원무과를 다니고 있지만, 월급은 모두 차압당하고 집마저 압류된 상태라 포장마차에서 얻는 하루 3 ̄4만원의 수입이 정훈이와 엄마, 외할머니와 여동생까지 네 식구 생활비의 전부다.

엄마의 고생은 나의 고생이기도 하다며 또박또박 얘기하는 정훈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밤 11시면 노점으로 나와 새벽 1시에 정리할 때까지 엄마의 곁을 지킨다. 엄마는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몇 번이고 집에 가라며 혼을 내지만 정훈이는 막무가내다. 숙제며 제 할 일을 아무 탈 없이 해놓고 나오는 탓에 엄마도 포기한 지 오래다. 장보기에 공과금까지 내며 주부역할까지 척척 해내는 정훈이는 시각장애 2급의 외할머니와 다섯 살 배기 여동생까지 돌본다. 이렇게 정훈이가 음으로 양으로 엄마를 도운 지도 어느덧 4년째. 정훈이의 효행은 동네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정훈이가 주는 감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녁 내내 엄마를 돕는 정훈이는 공부도 일등이다. 4년 내내 회장자리를 놓친 적 없는 모범생 정훈이는 정보처리사를 비롯한 컴퓨터 관련 자격증만도 대여섯 개나 되며, 장래희망이 외교관이라며 자랑스럽게 밝힌 대로 영어 실력도 제법이다.

열두 살 아름다운 소년 정훈이는 한 겨울에 길에서 노점을 하며 추위에 떠는 엄마가 못내 가슴 아파 SBS '해결 돈이 보인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냈다. 엄마에게도 따뜻한 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훈이의 간절한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급성 림프성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지헌이네 이야기

2003년 급성 림프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13살 지헌이의 별명은 똥쥐다. 막내딸에게 엄마가 직접 붙여준 똥쥐라는 귀여운 별명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지헌이가 백혈병 치료로 요실금에 걸린 것. 엄마 현숙씨는 그런 지헌이를 보살피면서 강해지기로 결심하고, 스스로는 '당찬 제비'라 이름지었다.

8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두 딸과 함께 친구처럼 남부러울 것 없이 지내던 현숙씨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지헌이의 백혈병 진단. 여성의 몸으로 건설회사 현장소장으로 활기차게 일했던 엄마 현숙씨는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탄탄가도를 달려왔지만 지헌이의 발병으로 일을 그만 둬야했다. 그 후 생계를 위해 방이 딸린 작은 가게를 시작했지만 운영난을 겪다가 그마저도 폐업하고 낮에는 지헌이를 돌보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어렵사리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지헌이를 돌보기에도 버거워보였던 엄마와 아픈 동생을 위해 착한 큰 딸은 아빠와 당분간 지내겠다며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할 수 없이 큰 딸을 떠나보내고 아픈 가슴을 한동안 추스르지 못했던 엄마 현숙씨. 큰딸과의 헤어짐은 아직도 엄마의 가슴 한편에 상처로 자리 잡고 있다.

수차례의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지헌이는 지난 2년 동안의 쉴 틈 없었던 병원치료와 검사가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여전히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잦은 병원생활로 학교를 나가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아 5학년 1학기에 이틀밖에 학교에 나가지 못했고 이후에도 결석이 많아 6학년이 되는 해에는 또래친구들과는 달리 별도의 진급 시험을 치러야했다.

시간 별로 약을 챙겨먹어야 하고 한번에 먹는 약만 13알, 한번은 약을 먹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에 엄마 몰래 약을 숨기기도 했다고 한다.

활달하고 책임감 있는 성격으로 국립암센터에서 소아암 환아 모임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당찬 제비' 현숙씨의 유일한 소망은 어렸을 때 예쁘고 건강했던 지헌이의 모습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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