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원 FX사업 ‘용산 로비전’ … 린다 김 뛰었다는 소문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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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전투기(FX) 사업을 주제로 ‘제15회 항공우주력 국제학술회의’가 지난 7일 서울 연세대 장기원기념관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는 FX사업에 제안서를 제출한 3개 업체 관계자들이 한데 모였다. 이들은 ‘차기 전투기 무엇으로 나는가’란 주제를 놓고 자사 전투기의 장점을 집중 부각했다. 왼쪽부터 패트릭 게인스 보잉코리아 사장, 살바도르 알바레스 스페인 공군 대령(EADS 측), 데이브 스콧 록히드마틴 국제사업부 이사. [연합뉴스]

8조3000억원이 투입될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을 둘러싸고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있는 서울 용산 주변에선 ‘소리 없는 혈전’이 한창이다. 방위사업청이 예정된 평가 일정을 진행하면서 무기를 팔려는 업체들이 막판에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보잉, 유럽의 다국적기업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등 세 업체가 그들이다.

 세 기업의 고위 인사들은 지난 7일 서울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이 주최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자사 전투기의 장점을 강조했다. 특히 이날 각 사 대표는 유승민(새누리당) 국회 국방위원장에게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세 회사가 고용한 에이전트와 홍보업체들도 분주하다. 퇴역한 공군 장성을 영입한 업체도 있다. 특히 업계에서 ‘사이드(side)’라 불리는 비공식 에이전트가 은밀하게 로비를 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1996년 백두사업(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 사업) 때 로비스트로 활동했던 린다 김도 상반기까지 모 업체를 위해 뛰었다고 업계 소식통이 전했다.

 세 업체가 속한 국가의 주한 대사들도 로비전에 가세했다. 성 김 주한 미 대사가 가장 적극적이다. 그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몇 차례 만나 한·미 동맹을 강조하며 협조를 구했다고 한 소식통이 전했다. 전투기 60대를 팔면 모두 12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미국 측은 내다보고 있다. EADS에 참여한 프랑스·독일·영국·스페인·이탈리아의 주한 대사들도 비슷하다.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은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 소식통은 “F-35를 보유한 일본은 그보다 작전반경이 넓고 타격 능력이 우수한 유로파이터가 선정될지 주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은 한국의 최첨단 차세대 전투기 60대가 서해 쪽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는 첩보에 따라 관련 정보를 탐색해 왔다”고 전했다. 합참의 한 당국자도 “주한 중국대사관의 무관, 일본의 유력 언론인이 우리의 FX 관련 동향에 상당한 관심을 표시해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과거 비리로 얼룩졌던 율곡사업(1993년)의 전철을 피하기 위해 부패 징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상태다. 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국군기무사령부는 방사청을 전담하는 별도 조직인 209부대를 가동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정보원도 줄곧 동향 파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양건 감사원장도 최근 “(비리 예방 차원에서) 기종 선정 프로세스를 처음부터 들여다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국방부의 한 당국자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공군의 전투력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세정·정용수 기자, 구동회 JTBC 기자

◆FX사업

공군이 보유한 F-4와 F-5 전투기의 노후화에 따른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16년까지 60대의 첨단 전투기를 도입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 1998년 1차, 2006년 2차에 이어 이번엔 3차 FX사업으로 불린다. 단일 무기 도입으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 8조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실전 배치된다. 7월 5일 3개사가 제안서를 제출했고, 8월 5일부터 10월 말까지 시험 평가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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