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국내 증권사들 국제업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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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국내 증권사들이 국제금융시장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 사실상 휴업 상태다. 이 틈을 타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노른자위 국제 업무를 도맡아 수천억원대의 이익을 거둬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주식 매매중개 업무도 외국계가 독차지하고 있다. 하루 평균 8천억원에 이르는 외국계 펀드의 매매주문 가운데 90%를 외국계 증권사가 처리하는 실정이다.

◇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은 외국계 독무대=주요 공기업의 민영화 사업은 외국계가 독식하고 있다. 한국통신은 30억달러(약 3조8천억원)의 해외 DR를 발행하면서 모건스탠리 딘위터와 UBS워버그, 동원.LG투자증권을 주간사로 정했다.

겉으론 외국계와 국내 기관이 사이좋게 나눠 맡은 것 같지만 속내는 외국계의 독무대다. 모건스탠리 딘위터와 UBS워버그는 '총괄 주간사' 를 맡아 발행 수수료(약 7백60억원)의 80%인 6백8억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우증권의 지난해 당기순이익(6백5억원)과 맞먹는다.

지난해 포항제철의 DR 발행은 메릴린치와 샐러먼스미스바니가, 담배인삼공사의 교환사채(EB) 발행은 CSFB가 총괄 주간사를 맡았다.

◇ 부실자산 매각도 외국사가 장악=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산관리공사(KAMCO)가 해외에 매각한 1조6천6백81억원(매각액 기준)의 부실채권 중 98%(1조6천3백35억원어치)를 모건스탠리 딘위터.골드먼삭스.론스타 등이 인수해 해외 투자자에게 되팔았다.

자금 동원력과 탄탄한 해외 판매 네트워크가 뒷받침되면 부실자산 매각은 노다지 광맥이나 마찬가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98년 자산관리공사의 'KAMCO98-1' 특별채권(담보가 없는 부실채권)입찰.

채권액(장부가격)이 2천75억원이었던 이 특별채권은 2백54억원의 판매가격이 매겨졌으나 골드먼삭스가 28억원에 낙찰받았다. 증권업계는 골드먼삭스가 이 채권을 3~4배의 가격에 외국 투자자에게 되팔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국내사들은 부실자산을 인수해도 팔 길이 없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부실자산의 본질가치를 매기는 분석 능력이 떨어지고, 외환위기 이전에 국제 업무를 다루던 전문가들도 대부분 외국계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 입지 좁아진 국내 증권사=외환위기 직후 대부분의 중형 증권사들은 해외현지법인을 폐쇄했다.

삼성.LG투자.현대.대우.굿모닝.동원증권 등 대형 6개사가 국제 업무의 명맥을 이어가지만 여전히 수익률이 낮은 매매중개에 치중하고 있다.

삼성증권 임기영 전무는 "국내 발행사들이 외국 투자은행을 지나치게 선호하면서 국내사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고 주장했다.

최운열 한국증권 연구원장은 "국내 증권사도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을 취급해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희성 기자 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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