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수입 호주생우 처리 고민

중앙일보

입력

"주인님, 어디 계시나요. "

인천시 불로동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계류장 축사 C-2동. 귀에 번호표를 단 호주산 수입 생우 2151호는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방울을 껌뻑거리며 점심 식사로 나온 볏집을 집어먹고 있다.

시장개방 반대니 뭐니 하는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이제 '무(moo)' 보다 '음메' 에 익숙해진 듯 싶다.

올들어 쇠고기 시장을 완전 개방한 이후 국내에 들어온 호주산 생우 수입 1, 2차분 1천3백5마리의 처리를 놓고 농림부가 고심하고 있다.

국내 축산농가의 반발로 농가 반입이 저지된 뒤 수입업자가 포기한 1차분 6백44마리는 일단 농협이 인수해 위탁사육하는 방식으로 현대아산의 충남 서산 목장과 축산기술연구소의 수원 목장에 분산 수용됐다.

인천항에 도착한지 이틀이 지나도록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다가 검역에 들어간 2차분 6백61마리도 다음달 초 검역이 끝나지만 갈 곳을 찾지 못할 경우 당분간 계류장에 머물러야 한다.

농림부는 서산목장에서 6월 5일까지만 맡아 기르겠다는 입장을 밝혀오자 대관령 등 목장을 상대로 수소문하고 있지만 1천여마리가 넘는 소를 따로 수용할 만한 시설을 찾지 못해 최악의 경우 도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생우 수입 파동을 보며 전문가들은 시장개방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우협회 등은 "생우를 국내에 들여오면 한우산업의 기반이 붕괴되는 것은 물론 소값마저 타격을 받아 국내 농민의 생존이 흔들린다" 며 정부의 책임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시장 개방으로 멍든 농심에 외국 소를 수입하는 것은 '매국노와 다름없다' 는 주장도 했다. 농민단체들도 "무작정 시장을 개방할 경우 고향을 떠나는 농민들이 도시 빈민층에 흡수돼 그 사회적 비용이 개방으로 얻는 이익보다 커질 수 있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적법한 절차를 거친 자유로운 교역 행위를 이익단체의 물리적인 힘으로 막는 것은 시장개방과 국제화의 추세 속에서 어이없는 행위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수출입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로 볼 때 무작정 시장개방을 막을 경우 수출상대국에서 똑같은 보복 조치에 나서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되겠는가. " (김종훈 외교통상부 지역통상국장)

"시장개방의 문을 닫고 보호무역 정책만을 펼칠 경우 생계비가 올라가고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등 생산자와 소비자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장기적으로 다양한 이익단체와 정책을 고루 듣고 적절한 정책을 펼치는 정부의 조정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병기 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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