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여전히 기업하기 안좋은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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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는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도입된 정책들이 기업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하고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면서 한국은 여전히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는 실효성보다는 국민의 정서나 명분에 따라 기업규제를 결정하는가 하면 시장원리를 표방하면서도 과거의 잘못된 대.중소기업 균형발전을 강조하면서 불필요한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3일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조건'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연구소는 미국의 경제 월간지인 `포브스'의 나라별 기업여건 조사결과 한국은 조사대상 25개국 가운데 18위를 차지해 대만.말레이시아.중국에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또 한국의 창업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15.6%로 영국의 0.6%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많고 창업 소요기간은 46일로 호주 3일의 15배나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지금까지 정부가 구조조정을 촉구하기 위해 내부거래 조사를 강화하고 여신회수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비공식적 압력을 동원하는가 하면 부채비율 200% 도입, 빅딜 유도 등 경영기조를 바꿀만한 정책을 경제적 기준이 아닌 정.재계 합의형식으로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들이 부채비율 축소와 구조조정을 위해 유상증자를 하면서 계열사 출자를 확대하자 정부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1년만에 부활했다면서 이는 실효성보다는 국민의 정서를 감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외이사로 활동할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사외이사제도를 시행하고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의 사외이사 수를 전체의 50%로 의무화한 것도 같은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소의 전영재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부채비율 200% 축소시한 설정 등 경직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무리한 자산매각과 대량 유상증자를 초래했으며 이는 주가하락과 주식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연구소는 한국의 GDP 대비 R&D(연구개발) 투자비율은 2.46%로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나 절대규모로는 선진국의 5분의 1∼25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술력이 있다고 평가되는 정보.전자.통신 분야도 선진국과 2.6년의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작년 기술수출액은 2억달러였으나 기술료 지급은 30억달러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또 올해부터 2004년까지 21만명의 정보기술(IT) 관련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앞으로 기업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와 간섭을 줄이고 시장 메커니즘을 엄격히 조정하는 쪽으로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서울=연합뉴스) 윤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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