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에 눈멀어 불행에 빠진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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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에 얽힌 신화나 전설,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은 대체로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보다 추한 얼굴을 드러내 왔다.신간 『황금의 지배(원제 ‘The Power of Gold’) 』 역시 부와 권력의 상징인 황금에 대한 인간의 ‘집착의 역사’를 넓은 시야 속에서 보여주는 책이다.

경제학자다운 정확한 분석력과 역사가의 열정을 동시에 갖춘 저자로 평가받는 번스타인은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토대로,지난 3천여 년 간 ‘황금에 눈먼 사람들’이 맞이한 운명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금이 단순한 장신구 역할에서 벗어나 화폐로 쓰이게 된 과정, 그리고 금본위제가 만들어지고 폐기되기까지의 인류 경제사를 차근차근 설명해줘, 다소 두툼한 책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물질문명의 핵심 요소인 돈(황금) 과 그것의 흐름인 금융에 관한, 흥미진진한 일급 역사서가 바로 이 책이다.

금의 화학기호인 AU는 '빛나는 새벽' 을 뜻하는 '오로라' 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매혹의 덩어리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여호와가 언약궤를 장식할 물건으로 가장 먼저 고를 정도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탐욕과, 그로 인한 많은 비극의 씨앗이기도 했다.

약속의 땅에 도착한 유대인들은 황금 송아지를 숭배하다 하느님의 노여움을 샀고, 고대 이집트의 많은 노예들은 파라오를 장식할 금을 채취하다 악취와 열기 가득한 갱도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권력을 쥐어보려 했던 로마의 크라수스는 결국 녹인 황금을 목구멍에 쏟아넣는 방법으로 살해됐으며, 잉카제국을 정복하고 그 화려했던 황금문화를 한 덩어리 금으로 만들었던 스페인의 피사로 형제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골드러시' 로 인해 벌어졌던 수많은 약탈과 학살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금이 역사의 주인공 대부분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금과 금의 대용품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저자가 책 머리에 인용한, 영국의 문예비평가 존 러스킨이 남겼다는 다음 이야기는 그같은 주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어떤 남자가 그의 전재산인 금화가방을 들고 배를 탔다. 그런데 곧 엄청난 폭풍이 몰려와 모두 배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남자는 그 무거운 가방을 허리에 동여매고 뛰어내렸다.

여기서 러스킨은 묻는다. "자, 그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면 그가 금을 소유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이었을까?"

물론 그는 금에 소유된 것이고, 금에게 이기는 삶이야말로 바른 길이라는 것이 저자의 답변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러스킨의 역설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인간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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