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동맹 MS는 미소 … 삼성 연합군 구글, 반격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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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크게 한 방 맞았고 애플은 만세를 부르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는 뒤에서 웃고 있다.”

 삼성과 애플 간 ‘세기의 재판’에 대한 미국 배심원 평결이 나온 다음 날인 26일(현지시간)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슬래시기어는 이런 분석을 내놨다. 온라인 IT 매체 시넷은 아예 “(삼성전자가 아니라) 구글이 가장 큰 패배자”라며 “IT업계의 아마겟돈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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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이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선수 격인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큰 승리를 거두면서 MS를 포함한 세 진영의 ‘모바일 영토전쟁’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애플은 구글이 뒤를 받치는 안드로이드에 반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당초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시장은 핀란드 노키아의 심비안과 캐나다 리서치인모션(RIM)의 블랙베리, 미국 MS 윈도모바일의 각축장이었다. 그러다 애플이 2007년 6월 iOS를 장착한 풀터치폰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적응 못한 노키아와 RIM은 급속히 쇠락했다. 노키아는 심비안을 포기하고 MS 윈도폰으로 갈아탔다. 삼성은 새로 떠오른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에 합류했다.

 현재 세계 모바일 시장은 안드로이드가 64.1%, 아이폰이 18.8%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애플은 안드로이드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구글보다 안드로이드폰을 만들어 돈을 버는 제조업체들을 겨냥하고 있다. 애플은 디자인과 사용환경(UI) 특허를 내세워 안드로이드 진영을 압박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화면 키우기처럼 구글이 안드로이드에 넣은 기능이 이번 재판을 통해 애플의 특허로 인정받으면서 향후 구글도 발을 빼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구글은 26일(현지시간) “대부분의 (애플) 특허는 안드로이드의 본질적인 기능과 관계가 없고 몇몇 특허는 미국 특허청이 재심의를 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애플 특허의 유효성에 대해 직접 관여하겠다는 ‘참전 선언’으로 읽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구글이 “모바일 산업은 새로 진입한 업체를 포함한 모든 기업들이 몇 십 년간 쌓아온 실적을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런 성과를 제한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한다”고 덧붙인 점은 ‘참전 선언’이라는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모바일 영토전쟁의 결말을 쉽게 예측하기는 힘들다. 구글과 애플은 앙숙이지만 MS는 애플과 상호 특허사용 계약(크로스 라이선스)을 체결하는 등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좋다. 그러나 안드로이드 대표주자인 삼성은 MS 윈도폰에서도 우등생이다. 제조 기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MS의 딜레마가 있다. 당장은 구글이라는 ‘공동의 적’ 때문에 애플과 손을 잡고 있지만, 이후 윈도폰의 성공을 놓고 애플과 경쟁하는 상황이 온다면 삼성만큼 좋은 협력 대상은 없다. 업계에서 “세 진영의 싸움이 어떤 형태로 전개돼도 삼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세 진영의 다툼과 별개로 삼성이 애플을 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에서도 ‘보르도 TV’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제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전체적으로 와인잔 모양에 액정(LCD) 화면을 감싼 테두리(베젤)를 얇고 광택 나는 검정색으로 만든 보르도TV는 2006년 출시되자마자 세계 TV시장 지형을 바꿨다. 유럽 소비자들은 “디지털 소믈리에가 나타났다”며 열광했다. 이 제품은 6개월 만에 100만 대가 팔려 최단기간 밀리언셀러가 됐다. 보르도TV는 20년 넘게 유지된 ‘TV 1위 소니’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삼성은 이후 6년째 세계 TV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듬해인 2007년 독일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에서 세계 전자 업체들은 하나같이 보르도TV를 빼닮은 제품을 내놓았다. 삼성은 보르도 TV의 와인잔 모양에 대해 디자인 특허를 출원했지만 다른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다른 회사 히트제품을 트렌드로 분석해 반영하는 전략이 일반적이어서 디자인 특허로 제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애플의 특허침해 소송 때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맡아 소송의 당사자가 된 최지성(61· 미래전략실장) 부회장은 보르도 TV 성공신화의 주역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보르도라는 제품으로 TV시장의 판을 새로 만들어 1등에 올라선 것처럼 휴대전화에서도 새로운 판을 열 제품이 나와야 삼성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새로운 기술과 시장 개척자)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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