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불 쬘 생각 버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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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벤처기업 확인제도를 도입한 지 3년만에 1만 개 벤처 시대를 맞이했다. 이와 같은 벤처기업의 성장에 따라 우리 경제는 조기에 IMF 관리체제를 졸업할 수 있었다. 벤처기업이 중소기업 및 대기업에 비해 그만큼 경영 성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다.

벤처기업은 그 나라 경제성장과 비례한다고 했다. 하지만 벤처기업인에게 지난 한 해는 좌절과 절망을 안겨준 시기였다. 지난 해 초 절정을 이루던 벤처 열풍이 중반부터 서서히 벤처 거품론 및 위기론에 휩싸이면서 끝없는 코스닥 시장의 추락, 창투사 및 엔젤 투자의 급격한 감소 등 악재 투성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벤처 기업들 마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코스닥 침체로 창투사들은 극도의 투자심리 위축과 재투자 불능 상태에 빠져들었다.지난 해 초 5백∼1천명의 투자 희망자가 몰려들던 엔젤클럽 투자설명회의 경우, 올 초에는 50명도 채 안됐다. 이른바 간판만 엔젤클럽일 뿐인 상황에 놓였다. 벤처기업으로 몰렸던 인력들도 다시 대기업으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벤처기업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벤처산업의 내부적인 요인이 크다. 일부 벤처기업인들의 도덕성 해이와 무늬만 벤처인 기업들이 나타나면서 주가 조작 같은 금융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와 함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자와 국민들의 신뢰 또한 상실되어 갔다. 벤처기업의 수익모델 부재 현상은 기술력에 의문을 가져왔다. 또, 벤처기업간의 과당경쟁은 시장질서의 혼란을 초래했다. 여기에다 대기업 및 일반 중소기업과의 공생 협력관계 구축도 미흡했다.

벤처 거품론과 함께 벤처 열풍도 식으면서 지난 하반기부터 벤처기업들은 생존 자구책으로 구조조정에 나서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침체에 빠진 벤처의 활성화는 먼저 코스닥시장의 활성화에 달렸다. 즉, 벤처 캐피털들을 비롯한 창투사와 엔젤투자가 살아야만 벤처기업들의 극심한 자금난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벤처기업 스스로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풍토와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 창의를 존중하는 시장경제, 코스닥 등록과 기업공시 및 조세제도 등 벤처산업 관련 제도와 관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기업, 대학, 연구기관, 금융기관, 정부 등 벤처 생태계를 구성하는 경제 주체간의 협력관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여기에 실패를 인정하고 용인해 주는 벤처기업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올해도 IT(정보기술) 및 BT(바이오산업) 등 첨단분야의 벤처기업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거품 제거 및 코스닥시장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투자 침체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에 대한 대가로 벤처기업의 옥석은 가려지고 ‘묻지마 투자식’의 일방적 투자 행태도 사라질 것으로 본다.

해서 올해는 양적 성장보다는 구조조정 및 내실화를 통한 질적 고도화가 진전될 것이다.

이러한 전망을 토대로 정부는 올해 1조원의 벤처 투자자금 조성을 통해 세계적 기업, 글로벌 스타로 육성 전략책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함께 벤처기업의 건전성 제고를 위한 확인제도 개선, 공시제도 강화, 벤처 캐피털 관리 강화, 벤처 관련 정보의 투명성 제고 등 수요기반 확충에 주력해 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그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새로운 벤처기업인상을 정립하는 일은 벤처기업인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

미국의 제약회사 머크(Merck)는 정직한 경영으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투명한 경영과 정직한 경영의 결과가 낳은 성과다. 국내 벤처기업 중에도 IMF 관리체제 하에도 불구하고 초우량 중견기업으로 성공한 기업들이 있다. 그들 기업 CEO들의 경영철학을 보면 정직·정도 경영, 투명·공개경영, 인간존중 경영, 고객만족 경영이라는 보고가 있다.

벤처기업의 장점은 작은 데 있다. 레스터 서로우 교수는 ‘작은 것은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것은 급속히 대기업(전문기업)으로 성장하는 작은 회사다’라고 말했다. 첨단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수요가 많은 하나의 제품으로 승부를 거는 전문화·차별화가 필요한 것이다.

시장의 힘을 무시하고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를 잃으면 기업만 망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의 명예도 잃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벤처기업인들 간의 협력과 공생관계를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성공한 벤처기업인들은 사업 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서는 안된다. 곁불을 쬐기 위한 행동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규창(서울중소기업청장)
자료제공 : i-Weekly(http://www.i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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