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 Buddy] 배우 이성재·감독 김상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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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34) 감독과 배우 이성재(31) 가 얘기하는 것을 보면 만화영화 '톰과 제리' 가 연상된다.

고양이 톰과 생쥐 제리가 다투는 것처럼 시종일관 아옹다옹한다. 다르다면 최후의 승자가 없다는 점. 한 사람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이내 반박하고 든다. 그리고는 서로 크게 웃는다. "이제, 그만 하자" 는 뜻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평소 상대방의 소소한 물건도 '탐내는' 그들이다. 현재 마무리 작업 중인 신작 '신라의 달밤' (6월 23일 개봉 예정) 촬영 중 김감독이 이성재의 혁대를 가로챘다고 한다.

"석 달 일정으로 경주에 갔는데 집사람이 혁대를 빠뜨렸더라" (김) → "그래서 반강제로 빼앗았나" (이) → "강탈한 게 아니다. 내 것도 많이 슬쩍하지 않았나" (김) → "슬리퍼 하나밖에 없다" (이) → "수준이 낮다. 얘기를 돌리자. " (김)

덩치만 컸지 얘기만 들으면 완전히 어린애들이다. 그만큼 허물없이 지낸다는 뜻이다. 김감독이 "우리는 자장면 같은 사이죠" 라고 말한다. 언제라도 부담없이 자장면 한그릇에 정이 통한다는 것. "그렇다고 배우를 자장면으로 생각하면 안되는데…. " 이성재가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신라의 달밤' 은 그들이 두번째로 함께 하는 영화다. 영화 두 편을 찍고서 '버디' 를 말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김감독이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으냐" 고 반문한다. 인연의 깊이를 산술적으로 잴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들이 처음 만난 작품은 1999년 히트작인 '주유소 습격사건' . 이 영화로 김감독과 이성재는 서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 '투캅스3' (98년) 의 참패로 한창 망가진 상태였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그 때 이성재를 만났습니다. 처음엔 그의 침착한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겉보기와 달랐어요. " (김상진)

"종전의 차분한 역할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액션 영화(웃음) 에 입문한 작품입니다. 아직도 때리고 맞는 영화엔 익숙하지 않지만 일종의 변신을 한 영화죠. "

'신라의 달밤' 에서도 이성재는 고교시절엔 모범생이었으나 나중엔 엘리트 깡패로 돌아서는 박영준역을 맡았다. '주유소…' 에서 보여줬던 액션을 다시 한번 발휘하는 셈이다.

또 김감독이 선수를 친다. "정말 이성재와 똑같은 캐릭터입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만 하고, 사고 한번 안치고, 또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인물이지요. "

이성재가 조용히 있을 리 없다. "왕따를 당한 적은 없다. 서클에 가입해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었지만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포기한 적은 있었지만…. "

둘의 사이는 불과 물 같다. 얼굴이 크고 성격이 급한 김감독에 비해 이성재는 이지적인 마스크에 좀처럼 감정 동요가 없다. 그래도 상대에 대한 신뢰감은 대단하다.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배우입니다. 워낙 착하게 살아와 처음엔 사람 자체를 바꿔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술집에도 자주 같이 가고 밤거리를 헤맨 적도 많았지요. 영화를 위해 사람을 망가뜨렸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의 성실성과 노력하는 자세는 대단합니다. 절대로 동시에 두 작품을 하지 않습니다. 또 매니저도 두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관리해가는 모습도 보기 좋지요. " (김상진)

"함께 일하기에 다른 어떤 감독보다 편한 게 사실입니다. 촬영장 분위기를 활기차게 이끌어가는 에너지가 가장 큰 미덕이지요. 그가 힘이 없으면 촬영장이 싸늘해질 만큼 리더십이 좋습니다. 지금도 김감독을 만나지 않으면 술 마시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관계가 각별합니다. " (이성재)

"그러기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의 제1조건은 '튼튼한 다리' 라고 했잖아" 라며 김감독이 받아친다.

상대방의 마음을 켜켜이 읽어내면서 벌이는 팽팽한 신경전이 재미있다. 평소 작품 혹은 캐릭터 분석 같은 딱딱한 얘기는 자제하고, 이것 저것 구분없이 얘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장.단점을 잡아낸다고 한다. 일상의 공동 체험이 영화 자체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김감독이 소망사항을 말했다.

"아직 코미디가 약해요.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하는 탓에 즉흥성 혹은 순발력이 달려요. 그리고 지금보다 운동도 더 열심히 해야겠죠. "

이성재도 수긍하는 눈치다. 그래도 서운했는지 "코미디는 개인기가 아니다. 상황 자체를 재미있게 끌어가는 연출력이 살아야 고급 코미디가 탄생한다" 고 응수한다. 그렇게 토닥거리며 그들의 사이는 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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