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학생들 학원 몰려 … “대학, 교사와 함께 출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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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수리논술학원 앞. 강의가 끝나는 오후 10시가 되자 100여 명의 학생이 쏟아져 나왔다. 통행로는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로 가득 차 지나가기 힘들었다. 학원 앞 편도 4차로는 학생들을 태우려는 학원버스 6대와 부모들의 승용차가 뒤엉켜 혼잡했다. 이 학원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200명이 수리논술 강의를 듣는다. 100명씩 2개 반이다. 수강 대기인원만 50명이 넘는다.

 “수리논술요? 학교에선 어림도 없어요.”

 이 학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수리논술 강의를 듣는 고3 이시영(가명)군의 말이다. 상위권대 입학이 목표인 이군에겐 수리논술 준비가 필수다. 그는 “학교 방과후 논술수업이 있지만 지원하려는 곳의 기출문제는 다루지도 않아 학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거리~대치 사거리 도로변에는 30여 개의 수학학원과 수리논술학원이 성업 중이다. 수능 대비 학원은 줄어들고 있지만 논술학원은 정반대다. 대치동의 한 논술학원장은 “2008년 정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이 폐지되고 수시모집이 확대되면서 최상위권 학생들만 다녔던 학원이 호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학원 수강료는 일주일 4시간에 월 30만~50만원 선. 고3 정모군은 “처음 문제를 접했을 땐 복잡한 기호와 그래프에 압도돼 풀 엄두가 안 났는데 학원에선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고 말했다.

 정군이 다니는 학원은 홈페이지에 풀이법을 일일이 올려놓는다. 그러나 학원 수업이 진짜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갖는 학생들도 많다.

“사실 불안해서 다니는 거예요. 학원을 오래 다녀도 새 문제를 보면 또 백지상태예요. 고교 3년 내내 수리논술 준비한 애랑 전혀 안 한 애랑 새 문제 놓고 풀라고 하면 어차피 둘 다 못 풀걸요.”(고3 A군)

 그럼에도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리는 이유는 고교 과정을 벗어나는 난이도 때문이다. 고3 조모군은 “수능은 학교 수업과 EBS로도 대비할 수 있지만 수리논술은 혼자서는 문제 이해조차 할 수 없다”며 “학교 수업은 수리논술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지방 고교는 고액을 주고 학원 강사를 초빙하기도 한다. 충남의 한 고교는 매주 화요일 서울에서 수리논술 강사를 불러 상위권 학생들을 모아 4시간씩 수업한다. 강의료는 한 번에 120만원(시간당 30만원)으로 학교가 부담한다. 교장은 “ 편법이지만 진학 실적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학생들은 대학들이 수리논술을 어렵게 내는 데 불만이 많다. 강남의 한 고교 남학생은 “내신·수능·논술로 이어지는 지옥의 트라이앵글은 옛날 얘기”라며 “요즘은 수능 최저 등급 맞추고 논술학원도 다녀야 하고 입학사정관제까지 준비해야 하는 ‘지옥의 다이아몬드’”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불만과 불안은 채점기준과 예시답안을 공개하지 않는 대학의 ‘비밀주의’에도 원인이 있다. 취재팀이 문제를 분석한 10개 대학 중 홈페이지에 지난해 출제한 수리논술 문제의 예시답안을 공개한 학교는 경희대·성균관대 두 곳뿐이다. 문항별 채점기준을 공개한 학교는 한 곳도 없었다. 대학가에선 ‘출제 범위를 고교 과정으로 한정하고 출제 과정에 교사를 참여시켜 난이도를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성모 서울시립대 입학관리본부장은 “올해부터 교사들을 출제 과정에 참여시켜 출제 범위와 난이도가 적합한지 의견을 물어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성시윤(팀장)·천인성·윤석만·이한길·이유정 기자, 박소현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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