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60) 한화그룹 회장의 법정구속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지난 1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45층 회의실엔 굳은 표정의 그룹 계열사 사장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긴급 사장단 회의를 주재한 이는 최금암(52) 경영기획실장(부사장)이었다. 최 실장은 “유고시에도 흔들림 없이 경영에 매달려 달라는 게 회장님의 뜻이다. 앞으로 각 사가 조직관리, 자금관리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사장단을 독려했다.
회의가 끝난 뒤 최 실장은 인터넷 사내게시판에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도 올렸다. 여기서 최 실장은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격려하며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지혜가 절실하다”며 “한 치의 동요 없이 그룹 및 각 사의 미래성장 전략을 계획대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그룹에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겸허하고 낮은 마음가짐으로 임하되 위축되지 말고 그룹의 입장을 정확히 인지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회장 공백이란 위기에 빠진 한화그룹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이끄는 인물은 최 실장이다. 그는 그룹 전략을 총괄하는 경영기획실 책임자다. 직급으로만 따지면 부사장인 최 실장은 한화그룹에서 서열이 한참 뒤다. 부회장과 사장이 즐비하다. 그럼에도 최 실장은 그룹 2인자인 경영기획실장으로서 김승연 회장의 공백을 메우게 됐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한화그룹 관계자는 “한화의 경영기획실장이 그룹 2인자임은 맞지만 반드시 시니어(최고참 경영자)가 그 자리에 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시점에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고 계열사와 소통을 잘하는 사람을 고르기 때문에 직급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보다 낮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중요한 사안은 최 실장이 김 회장을 면회한 뒤 사장단에 설명하는 절차를 거쳐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악고와 고려대를 나와 한화 경영기획실에서 주로 일한 최 실장은 지난해 2월 그룹 사장단 인사 때 경영기획실장이 됐다. 경영기획실 전략팀장에서 실장으로 승진했고, 직급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올랐다. 그룹 내에서는 당시 상대적으로 젊은 인물을 2인자로 임명한 데 대해 “장남 김동관(29)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을 염두에 둔 인사”라는 얘기가 나왔다. 경영기획실장의 임무 중 하나가 김동관 실장과 협력해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인 태양광 사업을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김 실장과 잘 소통할 수 있는 비교적 젊은 인물을 임명했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