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직도 공천을 돈으로 사고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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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한 공천헌금 문제가 다시 불거진 데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정치권이 국회에서 싸움을 벌이고 민생과 거리가 먼 정치 공방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부패 문제만큼은 상당히 개선됐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뒤통수를 맞았다.

 중앙선관위는 어제, 4·11 총선 때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이었던 현기환 전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 주는 대가로 3억원을 챙긴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선진통일당의 김영주 비례대표 의원은 당 차입금 명목으로 50억원 제공을 약속하고 공천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선관위에서 일부 관계자료까지 검찰에 넘겼다고 한다.

 물론 당사자들은 모두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밝혀낼 수밖에 없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민감한 시점이긴 하나 그럴수록 검찰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철저하게 혐의 내용을 밝혀내야 한다. 이제 정말로 정치를 돈으로 오염시키는 저질 인사들이 정치권에 얼씬도 못하게 뿌리를 뽑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정치권도 이해관계를 떠나 신속하게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국회의원 공천헌금은 선거부정 사건 중에서 가장 악질적이다. 4년간 70억원의 세금을 쓰는, 국민의 대표인 대한민국 헌법기관을 돈을 받고 팔아 넘기는 범죄다. 단순히 자신을 더 알리겠다는 사전선거운동 같은 선거법 위반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렴치 범죄다. 특히 새누리당은 과거 차떼기당의 오명을 씻기 위해 다시는 부패와 손을 잡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며 천막당사의 고행을 감수했던 정당이 아닌가. 지난 총선을 앞두고도 돈봉투당의 얼룩진 과거를 지워보겠다며 당명까지 바꿨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새누리당의 약속과 다짐 모두 의심받게 될 위기에 놓였다.

 비록 한 가지 의혹이긴 하나 혐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치적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 총선을 앞두고 쇄신을 다짐할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공천은 정치쇄신의 첫 단추이자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며 투명공천에 정치운명을 걸었다. 고발당한 현 전 의원은 친박계 인사로 공직후보자추천위원이 됐다. 박 의원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도덕성 관리, 반부패 시스템 구축 능력 등이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더욱 걱정인 것은 공천을 둘러싼 돈 거래가 현 의원뿐이냐는 의심이다. 이번 사건은 현영희 의원의 비서가 인사에 불만을 품고 제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정치권에서는 제2, 제3의 공천헌금설이 흉흉하게 나돌고 있다. 선관위는 주요 선거부정 제보자에게 최고 5억원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그러니 선거사범 공소시효 만료일인 10월 10일까지 다른 제보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모든 의혹은 밝혀져야 한다. 부정한 돈 거래로 금배지를 단 사람이 있다면 모두 솎아내는 게 나라를 위하는 길이고, 국민이 바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