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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홍의 ‘초선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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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나는 좀 배웠다는 사람치곤 상당히 단순하고 저돌적인 성격이다.” 민주통합당 황주홍(전남 장흥-강진-영암) 의원이 자서전에서 스스로를 그리 표현한다. 강진군수를 세 번 연임한 후 19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1993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태평화재단 멤버로 정치권에 입문했고, 나중엔 건국대 정외과 교수도 지냈다. 19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13개월간 복역한 이력이 있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미국을 증오해 멀쩡한 길을 놔두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밟고 다니며 반미에 대한 결의를 표현했다”고 책에 쓸 정도로 엉뚱한 면도 있다.

 그는 배지를 단 후부터 초선 일기를 쓴다. 그가 글을 쓸 때마다 ‘사고’가 터진다. 민주당이 ‘박지원 체포동의안’ 결사 저지를 결의했던 지난달 30일 그는 박 원내대표에게 검찰에 출두하라고 했다. “제발 여론을 얕잡아보지 말자”면서다. 그 전에는 일기에 ‘대통령 국회 입장 시 기립’을 관례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발톱의 때만큼도 안 여기는 당 정서에 먹힐 리가 없었다. 실제 이 대통령이 국회에 왔다 나갈 때 민주당 의원대부분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삐딱선은 시작부터 탔다. 지난 6월 의원 연찬회에 참석한 경험을 토대로 ‘민주당은 여러 면에서 위기다’라는 글을 올려 지도부를 비판했다. 그는 “지도부는 여론의 동향에 대해 둔감하거나 무시하거나 무지하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정당의 말로는 뻔하다”고 일갈한 것이다.

 그는 배지를 달기 전부터 독특한 기질이 있었다. 군수 시절이었던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곤 “정당이 자치단체장 후보자를 공천하면 돈 선거를 조장하고 지방행정이 중앙에 종속된다”며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다. 2008년부터 정당공천제 폐지 운동에 앞장섰는데 그걸 실행한 거였다. 2006년 군수에 재선되고 나선 교수직도 내놓는다. 언제 낙선할지 모르는 정치인이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직을 던지는 일은 드물다. 그런 황주홍은 조직에선 그리 달갑지 않은 인물이다. 실제 “당의 대오를 흐트러뜨린다”에서부터 “혼자 튀기 위해 그런다”까지 곱지 않은 시선이 적잖다.

 하지만 이번엔 지성이면 감천이었던 걸까. 박지원이 31일 전격적으로 검찰에 출두했다. “당과 여야 동료 의원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면서다. 전날 체포동의안 저지를 위해 명운을 걸고 싸우겠다던 다짐이 하루 만에 뒤집혔다. 박지원의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론 “방탄국회는 하지 말자는 게 국민 여론”이란 황주홍의 외침이 받아들여진 셈이 됐다.

 단순하고 저돌적이어서 튀는 구석이 있지만 황주홍 같은 이가 민주당에 있어 다행이다. 집단엔 조직의 논리에 충실한 이도 필요하지만 당론과 달라도 자신의 소신과 상식에 기반한 주장을 하는 이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뿐 아니라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모두 진영 논리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를 지향하는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대선을 앞에 두고 ‘안철수 현상’을 불러오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