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읽기] 우리 일부가 돼버린 인공물 어느새 인공물 닮아가는 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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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온갖 인공물들로 가득차있다. 처음에는 인공물과 사람의 관계가 무척 단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계장치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완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고도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역전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이미 많이 지적됐기 때문에 그저 그런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느새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되었고, 혹시 집에라도 두고 나오면 하루종일 오줌마려운 강아지마냥 불안해하는 지경이 된 휴대전화는 어떨까? 우리는 과연 이 편리한 장치로 새롭고 드넓은 의사소통의 장을 얻은 것인가, 아니면 거대 통신업체들이 구축한 망 속에 스스로를 편입시켜 기계들 사이의 신호 교환을 모방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콘 북스' 시리즈의 한 권인 '하이데거, 하버마스 그리고 이동전화'(조지 마미어슨 지음, 김경미 옮김, 이제이북스)에서 영문학자인 저자는 세계적인 이동전화업체인 노키아의 선전문구 "의사소통에 탁월하다"가 터무니없음을 지적한다. 이 비판은 하이데거와 하버마스가 제기했던 '이야기함'과 '의사소통'의 본원적인 의미가 제기되면서 무척 진지해진다.

이 책의 장점은 이미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린 인공물들의 의미를 위대한 사상가들의 개념과 연관지어 진지하게 성찰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하이데거는 "이야기하기에 곧 인간"이라고 했고, 하버마스는 도구적 합리성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의사소통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본원적인 '이야기함'이 이동전화화(化)되면서 의사소통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이해'한다는 적극적이고 풍부한 의미를 상실한 채 단순한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뉴욕 타임스는 오늘날 "사용자들이 그 어느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그것은 하이데거가 말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한 통신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해를 지향하는 긴 통화는 휴대폰 요금의 압박과 통화정체로 인해 죄악시된다. 결국 우리는 빈번한 통신과 메시지 교환 속에서 기계를 닮아가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시간당 20~30개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다른 업무를 처리하는 사회는 유의미한 발언의 문제, 즉 어디까지 말할 수 있고 말해져야 하는지를 머지않아 잊게 될 병적 사회"라고 말한다.

같은 시리즈에 포함된 '플라톤과 인터넷',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 등도 저자는 다르지만 같은 전략으로 과학기술의 의미를 독해한다. 사실상 오늘날 과학기술은 사회문화적 복합체이며, 과학이나 기술의 한 측면에 국한해서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이 책들은 과학철학, 과학사회학과 같은 이른바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 접근을 통해 사회과 과학을 한데 얼크러진 총체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짧은 분량 속에서 주요 사상가들의 개념을 소화하느라 많은 내용이 지나치게 압축되어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기존의 과학 대중화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을 꾀하는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동광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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