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66> 표적 항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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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아직도 ‘암=죽음’을 떠올리시나요. 정부는 최근 우리 국민 가운데 암으로 투병하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환자가 80만 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실제 주위를 둘러보면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한 뒤 나았다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괄목할 만한 의학의 진보이지요. 이런 성과 뒤엔 암을 통제한 의약품이 있습니다. 바로 표적 항암제입니다. 의약품의 꽃으로 불리는 이 약의 정체에 대해 알아봅니다.

권선미 기자

●정상 세포와 암 세포 구별하는 표적 항암제

암 정복을 위한 의약품의 발전은 계속되고 있다. 표적 항암제는 암세포만 공격해 부작용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사진은 신약개발 연구중인 JW중외제약 직원들. [사진 JW중외제약]

암(癌)은 어떤 원인으로 유전자가 변형돼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과다 증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세포는 인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다. 세포가 모여 장기를 만들고 인체가 완성된다.

 유전자 변형이라는 암 질환의 특성상 암은 뇌·갑상샘·폐·유방·간·위·대장·자궁·혈액·골수·지방·뼈·근육 등 인체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다. 암 세포 분열이 빠르게 진행되면 온 몸에 암세포가 퍼지기도 한다. 통제되지 않는 세포의 증식은 정상적인 세포와 장기의 구조·기능을 파괴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암 치료 가운데 우선 꼽히는 방법은 수술이다. 최대한 많은 암 덩어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초기 암환자는 이 치료법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다른 장기로 전이됐거나 부위가 크면 이런 방식으론 쉽지 않다. 항암제로 암세포를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암세포가 분열기에 접어들었을 때 항암제를 투여해 세포의 증식을 막는 방식이다. 마치 융단폭격하듯 세포를 공격한다. 초기에 개발된 항암제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암환자를 치료했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항암제는 암세포나 정상세포를 구별해 공격하지 않는다. 성장·분열기에 있는 모든 세포는 항암제의 공격을 받는다.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극심한 오한(고열을 동반하면서 한기를 느끼고 근육이 수축하는 증상)과 구토(구역질과 신물이 올라옴)를 호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엔 암 세포만 공격하는 약이 나왔다. 바로 표적 항암제다. 기존에는 자동차가 고장 나면 부품을 모두 해체한 후 원인을 찾아 고치듯 암을 치료했다. 하지만 표적 항암제가 개발된 이후에는 전자 제어기로 고장 원인을 찾아 해당 부품만 교체하는 식으로 암을 치료한다.

 표적 항암제는 ‘암 세포가 유전적 변이를 한 결과 정상 세포와 다른 신호전달체계를 갖고 있다’는 개념을 활용한다. 모든 세포는 자신의 막(膜)에 외부로부터 오는 신호를 받아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수용체를 갖고 있다.

 이런 신호는 다른 분자와 상호작용하는 분자로 구성돼 있다. 마치 육상 계주에서 바통을 다음 선수에게 넘기는 것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가 손상된 정상 세포는 사멸신호를 받아 없어진다. 하지만 암세포는 이 신호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한대로 분열한다. 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자체적으로 혈관을 만든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와는 다른 신호전달체계로 움직인다는 의미다.

 표적 항암제는 암세포만의 세포 신호전달을 차단해 암 세포와 정상 세포를 구별한다. 이후 정상세포는 제외하고 암세포만 선택해 공격한다. 마치 벙커에 숨어 있는 적에게 유도탄을 발사해 정확하게 타격하는 식이다. 이런 표적 항암제의 개발은 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암환자도 고혈압·당뇨병처럼 치료

최초의 표적 항암제는 혈액암의 일종인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Glivec)이다.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노바티스라는 다국적제약회사에서 개발했다. 이 약은 2001년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최초로 시판 승인 받았다. 한국에는 2003년 2월부터 판매됐다.

 글리벡은 암 세포의 성장을 지시하는 암 단백질인 타이로신 키나제(tyrosine Kinase)를 선택적으로 차단한다. 이 단백질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원인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Ph) 염색체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글리벡은 암 단백질에 결합해 암 세포의 증식·분화·생존에 관한 신호전달을 끊어 암세포를 제거한다. 이 과정에서 정상 세포는 거의 건드리지 않아 마법의 탄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백혈병 환자가 글리벡에 효과를 보이지는 않는다. 글리벡은 표적물질로 작용하는 필라델피아 염색체 이상이 원인인 경우에만 효과를 보인다.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만성골수성백혈병과 일부 급성 백혈병에 특이하게 나타나는 유전자 이상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90% 이상은 필라델피아 염색체라는 이상 염색체를 갖고 있다. 다른 백혈병 환자는 글리벡을 먹어도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글리벡이 개발된 이후 만성골수성백혈병은 난치병에서 고혈압·당뇨병 같이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됐다. 글리벡으로 치료받는 환자의 평균 기대수명은 25년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글리벡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많은 암 환자에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다른 암도 글리벡과 마찬가지로 치료제가 개발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된 것이다.

 글리벡의 탄생 이후 많은 제약사들이 암세포나 유전자가 어떤 신호에 반응하는지를 연구했다. 동시에 암세포를 억제하는 표적 항암제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현재 폐암 치료제 이레사(아스트라제네카), 대장암 치료제 얼비툭스(머크), 다발골수종 치료제 벨케이드(얀센),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로슈) 등 약 20여 종의 표적 항암제가 국내에 시판되고 있다.

 국내 제약회사에서 개발 중인 표적 항암제도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시판 허가를 받은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슈펙트(일양약품), JW중외제약에서 개발 중인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윈트(Wnt) 암줄기세포 억제제 ‘CWP231A’ 가 대표적이다.

●항암제 내성·표적물질 문제는 한계

표적 항암제가 개발된 암은 완치가 가능할까. 대답은 “아직은 아니오”다. 표적 항암제가 기존 항암제보다 장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표적 항암제는 암세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특정 과정을 선택적으로 억제한다. 약효를 보기 위해선 암 환자가 이런 표적 물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폐암 치료제 이레사가 처음 개발됐을 땐 초기 비소세포 폐암 치료제로 알려졌다. 모든 비소세포 폐암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예상과 현실은 달랐다. 어떤 환자에게는 효과가 좋았지만 어떤 환자에겐 거의 효과가 없었다. 이레사는 폐암 바이오 마커(bio-marker·생체지표)인 EGFR 수용체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에만 우수한 치료효과를 보인다. 만일 폐암의 원인이 EGFR 돌연변이와 관련이 없으면 표적 항암제를 사용해도 효과가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내성이다. 표적 항암제는 특성상 암 세포를 완전히 죽이기보다 세포 성장이나 증식을 억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효가 나타나기까지는 오랫동안 약을 복용해야 한다. 초기에는 우수한 치료효과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암세포는 생존을 위해 다른 우회로를 찾는다. 새로운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기면 억제됐던 암세포는 증식을 시작한다. 암이 재발하는 것이다.

●암 치료 미래는 개인별 맞춤치료

앞으로 암은 어떻게 치료할까. 의료계에서는 미래의 암 치료는 암 환자 개인 맞춤형으로 발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간혹 같은 유방암에 걸린 환자들의 병 진행 양상이 다른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조기에 암 진단을 받았어도 진행이 빨리 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는 환자가 있는 반면 어떤 환자는 암을 늦게 발견하고도 진행이 더뎌 오랫동안 생존하기도 한다. 개개인마다 암 유전자 발현이나 활성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암 치료 예후나 발병양상도 달라진다.

 이런 이유로 의료계 일부에서는 같은 부위에 발생한 암 환자를 치료하더라도 유전자 발현양상에 따라 진단-치료를 달리하는 개인 맞춤형 치료를 강조하고 있다. 이미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 같은 선진 암 병원에서는 개인 맞춤형 암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런 치료방식을 모든 암환자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어떤 방식으로 암세포가 성장하는지 그 원리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맞춤형 암 치료를 위해서는 암 발병 원인이 무엇인지 A에서 Z까지 완벽히 분석해야 한다. 암 발병 원인과 기전을 알려주는 바이오 마커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바이오 마커는 암을 추격하는 일종의 표식이다. 글리벡 개발 30여 년 앞서 의학계는 필라델피아 염색체 이상이 만성골수성 백혈병의 발병 원인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이후 돌연변이 암세포의 성장과 분화를 촉진하는 암 단백질(타이로신 키나제)도 발견했다. 바이오 마커를 찾아 신약을 개발하기까지 과정을 보여주는 한 예다.

 현재 바이오 마커가 규명된 암은 폐암의 상피세포성장인제 수용체(EGFR) 돌연변이, 유방암과 위암의 HER-2, 대장암의 KRAS, 만성골수성백혈병의 Bcr-Abl, 위장관기저종양의 C-KIT 등이 있다.

도움말=아주대학교 약학대학 장선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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