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스타덤, 여우주연상 2관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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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유대인에겐 금발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지중해와 중동의 샘족계 세파라디 유대인에겐 분명 금발이 없다. 그렇지만 중· 동부 유럽 여러 부족의 혼혈인 아시케나지라면 사정이 다르다. 북유럽·슬라브·독일계 유대인에게선 금발을 볼 수 있다.

금발은 세계 인구의 1.8 %를 차지하며 주로 북유럽 지역에 많이 분포돼 있다. 희소성 때문인지 서양에선 전통적으로 금발 미녀에 열광한다. 비운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한때 금발 미녀를 대표했다. 멕 라이언, 미셸 파이퍼, 캐머런 디아즈, 니콜 키드먼도 인기 있는 블론드 여배우다. 유대인 금발 여배우도 몇 명 있다. 위노나 라이더, 앨리시아 실버스톤, 스칼릿 조핸슨, 그리고 귀네스 팰트로(사진) 등이다.

아버지 쪽만 유대인 두 자녀 유대식 교육
팰트로는 197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퀘이커교도인 어머니 블리드 대너는 여배우이며 아버지 브루스 팰트로(본명: 팰트로비치)는 TV 영화 제작자 겸 흥행사였다. 부계는 대대로 랍비(유대교 성직자)를 지낸 폴란드-러시아계 유대인이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팰트로는 아버지만 유대인이므로 100% 유대인으론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미국 유대 사회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또 그녀의 두 자녀(1남 1녀)를 유대식으로 교육시킨다. 심지어 대형 유대계 의료기관인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 자녀를 출산했다. 이래저래 미국 유대 사회는 그녀를 유대인으로 간주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한 팰트로는 LA·뉴욕에서 사립 중·고교를 다녔다. 고교 졸업 후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진학해 미술사를 공부하다 자퇴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것이다. 먼저 연극 무대에 섰다. 그러곤 곧 영화로 옮겼다. 91년 존 트라볼타 주연의 ‘정열의 샤우트’, 그리고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크 선장’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95년 연쇄살인마 주제의 공포·스릴러 영화 ‘세븐’은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브래드 피트, 모건 프리먼, 그리고 케빈 스페이시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 틈에서 주인공 형사의 애인 역을 맡았던 그녀는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같은 해 ‘대통령의 연인들’에 나오면서 ‘청순한 금발 미인’의 이미지를 굳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예지는 그녀를 또 한 명의 평범한 금발 여배우가 나온 정도로 보았다. 그녀가 “동 세대 배우론 드물게 청순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래도 연기력은 미흡하며 열정적이 아니다”고 한 자락을 깔았다.

팰트로는 96년 ‘엠마’에서 주연을 맡아 연기력을 많이 보완했다. 98년 6월엔 전설의 명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의 54년 명작 ‘다이얼 M을 돌려라’를 리메이크한 ‘퍼펙트 머더’에 마이클 더글러스와 함께 출연해 성가를 올렸다. 그러다 98년 12월 영·미 합작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일약 대스타 반열에 올랐다. 주인공 비올라역을 맡은 그녀는 이 작품으로 99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등 양대 메이저 영화제의 최우수 주연 여배우상을 수상하면서 2관왕에 올랐다.

잘나가던 팰트로도 2000년대 초부터 몇 년간 슬럼프를 겪었다. 아마도 전성기 시절 그녀의 남성 편력 등 사생활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영화 ‘세븐’ 촬영 중 만난 브래드 피트와 오랜 연인 관계를 유지하다 헤어지고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같이 연기한 벤 애플렉과 교제했다. 애플렉과 헤어진 후 팰트로는 2002년 영국 록그룹 콜드플레이의 리드싱어 크리스 마틴과 결혼했다. 마틴은 그녀보다 다섯 살 연하다. 결혼식엔 이미 타계한 아버지를 대신해 스필버그 감독이 신부와 같이 입장했다. 결혼 후 1남1녀를 두었으며 아들 이름도 유대인 이름 모제스로 지었다.

2008년이 되자 팰트로는 재기했다. 특히 프랑스-캐나다계 유대인 존 파브로 감독이 만든 ‘아이언 맨’ 시리즈 세 편에서 역시 유대인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함께 나오며 지난날의 인기를 얼마간 회복했다.

노래·요리 솜씨 뛰어나고 사회활동도 활발
팰트로는 다재다능하다. 빼어난 가창력은 아니지만 가수로도 많이 알려졌다. 2000년 휴이 루이스와 듀엣으로 부른 ‘크루징’은 인기 차트 상위권에 랭크됐다. 그가 나온 뮤지컬 영화 ‘컨트리송’(2010)의 OST 삽입곡도 불렀다. 어려서 스페인에 어학 연수 간 적이 있어 스페인어도 유창하다. 요리 솜씨도 일품이다. 2012년 3월 『나의 아버지의 딸』이란 요리책을 냈다. 대필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이 책은 출간 후 적지 않은 판매액을 올렸다. 사회 활동도 왕성하다. 아동 구호단체 ‘어린이를 구하자(Save the Children)’의 홍보 대사를 맡고 있다. 또 뉴욕 소재 빈민 구호단체 ‘로빈 후드 재단’의 이사로 활동한다. 광고 모델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에스티 로더 향수와 가방 회사 ‘코치’ 광고에 등장한다. 2006년엔 한국의 한 패션 브랜드 광고 모델을 하기도 했다.

연약하고 청순하며 품위 있는 역할만 맡아온 팰트로의 본 성격은 영화 속 이미지와는 다르다고 한다. 177cm의 장신인 그녀는 화통한 입담과 때로는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아 가끔 구설에 오른다.

연극·영화·뮤지컬 배우, 가수, 사회사업가, 모델 등 다양한 활동을 보면 팰트로는 분명 다방면에 소질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연기자나 가수로서의 그녀의 재능은 여전히 정상급 수준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녀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할리우드 유대인 파워가 그녀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또 지속적으로 관리해준 덕택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전 외교부 대사 jayson-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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