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무쇠 가마솥에 닭 100 마리 인삼 100 뿌리 … 푹 고니 군침이 절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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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은 삼복 더위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히는 음식이다. 입맛 없고 쉽게 지치는 여름, 뜨거운 삼계탕 한 그릇에 온몸이 개운하고 시원해진다. 초복(7월 18일)을 앞두고 경북 영주 ‘풍기삼계탕’을 찾아갔다. 1980년 문을 연 ‘풍기삼계탕’은 담백한 삼계탕 맛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곳이다. 영주에서의 ‘1박2일’. 32년 동안 삼계탕을 끓여온 이영자(67) 사장이 그 사투리만큼이나 구수한 맛의 비결을 보여주고 들려줬다.

닭 100 마리를 무쇠 가마솥에 한꺼번에 집어넣고 끓이는 게 경북 영주 ‘풍기삼계탕’의 맛 내는 비법이다.

점심 식사 준비가 새벽 6시30분부터 시작됐다. 바로 전 배달받은 닭 100여 마리를 손질하고, 삼계탕에 들어갈 찹쌀과 인삼·대추·마늘·밤·단호박 등을 씻고 자르는 과정이다. 이영자 사장은 맨손으로 닭 목 울대 주변 기름을 샅샅이 떼냈다. 내장 주변의 지방 덩어리들도 이 사장 손에 끌려나왔다.

“세상 많이 변했지예. 80년대 초반만 해도 삼계탕에 노란 기름이 떠있는 걸 손님들이 좋아했다카이. 기름을 따로 모아뒀다 개인 뚝배기에 조금씩 분배해 줬다 아인교.”

한 세대 만에 ‘좋은 삼계탕’의 기준이 달라졌다. 이젠 닭의 지방을 얼마나 철저하게 제거하느냐가 삼계탕 기술이 핵심이 됐다. 닭 지방 떼내는 솜씨는 이 사장 따라갈 사람이 없단다. “딸한테도 갈치(가르쳐)주고, 직원들한테도 갈치줬는데 잘 못하네요. 이기(이게) 왜 안 될까…,” 새벽마다 직접 닭을 손질하는 이 사장의 푸념. 은근한 자랑이다.

닭 뱃 속에 집어넣을 삼계탕 재료들.
이영자 사장이 삼계탕 닭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풍기삼계탕’의 삼계탕.담백하고 시원한 맛이다.

‘풍기삼계탕’에선 태어난 지 40~45일 된 영계를 쓴다. 무게 550g 정도로 일반 삼계탕용 닭 치곤 꽤 크다. 서울지역 삼계탕집들은 보통 450g 정도 크기의 닭을 쓴다고 한다. 인삼은 풍기인삼시장에서 4년근 삼을 사다 쓴다. 굵기가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제법 튼실한 삼이다. 찹쌀과 단호박·대추·마늘 등은 주변 농가에서 재배한 것들이다. 깨끗이 씻은 닭 배 속에 인삼 한 뿌리와 찹쌀 두 움큼, 대추 두 개, 마늘 한 쪽, 밤 한 개, 깍뚝 썰기한 단호박 두 조각을 넣은 뒤 닭 다리를 얌전히 포개 무명실로 묶는다. 모든 작업은 이 사장의 맨손으로 이뤄졌다. “한겨울 며칠을 빼곤 고무장갑은 끼(껴) 본 적이 없슴니더.” 이 사장의 오랜 습관이라고 했다.

‘풍기삼계탕’은 80년 2월 문을 열었다. 이 사장의 남편 김대현(73)씨가 양계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뭘 해도 맛있게 만드셨다”는 시어머니(2002년 작고)의 음식 솜씨를 믿고 시작한 장사였다. 친정이 풍기였던 시어머니에게 삼계탕은 친숙한 음식이었다. 인삼 산지에서 자주 해먹는 음식이라 했다. 하지만 80년 당시 영주에선 삼계탕을 파는 식당이 없었다. “삼계탕이 뭐꼬. 돼지고기로 만든 긴가.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임니꺼.” 시작은 소박했다. 삼계탕 뚝배기 여섯 개 사다 놓고 개업식을 했다. “씻어 쓰면 되겠지 싶었는데 어림없더라꼬요. 열 개씩, 열 개씩 더 사서 썼지예. 지금은 200개쯤 될 겁니다.” 처음엔 배달도 했다. 오토바이로 다니기 힘들어 이 사장이 자동차 운전을 배웠다. “그때 영주에서 여자가 운전하는 사람은 나까지 해서 딱 두 명이었다고요.“

삼계탕은 잘 팔렸다. 세 얻어 장사를 시작한 지 6년 만에 영주 시내 하망동 지금 가게 자리를 사서 옮겼다. 500㎡(150여 평) 가게를 8000만원에 사면서 5000만원을 대출받았다. 1년에 1000만원씩 갚을 요량이었는데, 3년 만에 빚을 다 털었다. 이 사장은 처음에 장사가 잘 된 건 닭 덕이라 생각한다. 남편이 직접 기른 닭이 “끓여놓으면 단맛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닭 자급자족 시기는 금방 끝이 났다. 한 달에 몇 백, 몇 천 마리씩 팔리는 닭을 직접 키워 대는 건 불가능했다. 인근 도매상을 통해 닭을 받아쓴 지 벌써 25년째다. 이 사장은 ‘풍기삼계탕’ 맛의 비결을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 닭 100마리를 한꺼번에 넣고 끓이는 과정에서 찾았다. 찬물에 황기와 헛개나무·엄나무·가시오갈피 등을 넣고 끓이다 물이 팔팔 끓을 때 준비해둔 닭을 집어넣는다. 이 사장은 “닭 100마리 배 속에 들어 있는 인삼 100뿌리의 맛과 영양이 국물에 우러나오고 닭살에 배어들어가 더 맛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풍기삼계탕’ 이영자 사장. 삼계탕 끓이며 반평생을 보냈다.

가마솥은 음식점 마당 한구석에 있었다. 원래 장작불을 땠는데, 시커먼 연기 때문에 주변의 민원이 많아 10년 전부터는 가스불로 끓인다. 닭을 넣고 1시간30분 정도 고면 삼계탕은 완성이다. 이제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한 마리씩 작은 뚝배기로 옮겨 한번 부르르 더 끓인 뒤 내놓으면 된다. 국물은 의외로 뽀얗지 않았다. 기름기가 적어서다. 완성된 삼계탕에 파를 올리지 않는 것도 ‘풍기삼계탕’의 특징이다. 인삼 향을 지키기 위해 향이 강한 파를 뺀 것이다.

낮 12시.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그날 장사는 끝이다. 이 사장은 “딱 1인분 남는 게 제일 싫다”고 말했다. 혼자 오는 손님은 거의 없어 남은 1인분은 못 팔 확률이 크다. 요즘엔 하루 100그릇 정도 팔리지만, 복날엔 900그릇 정도 나간다. “복날엔 새벽 4시부터 가마솥을 끓입니더. 줄 선 손님들이 골목길을 꽉 메우고 있지예. 그래도 준비할 때마다 떨리긴 매 한가집니더. 오늘 손님이 마이(많이) 올까, 덜 올까. 처음 가게 문 열던 날이랑 설레는 마음은 똑같다 아입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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