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축구 못하는 건 거래와 타협 문화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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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함과 냉정함을 뜻하는 정치가, 철혈(鐵血) 재상 비스마르크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13억 중국인은 이 사람에게 ‘철의 장수(鐵帥)’라는 닉네임을 붙였다. 한국인 이장수(56·사진) 전 광둥(廣東) 헝다(恒達)팀 감독이다. 그는 1998년 이후 중국의 프로리그 네 팀을 이끌었다. 모두 268게임을 치러 118승을 거뒀다. 405골을 넣고 획득한 점수는 438포인트다. 모두 중국 프로축구 리그의 최고 기록이다. 아울러 각종 리그 우승을 이끌어 내 중국 축구감독 중 유일의 ‘그랜드슬램 달성자’라고도 불린다. 그 별명대로 냉혹하고 무서운 용장(勇將)일까. 최근 구단의 이탈리아 감독 영입 결정으로 광둥 헝다의 지휘봉을 놓고 막 귀국한 그를 21일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용장이라기보다 지장(智將)의 풍모가 더 돋보였다. 인구는 13억이면서도 축구에 관해서 만큼은 할 말이 거의 없는 중국 축구 부진의 핵심을 ‘거래와 타협의 문화’ 때문이라고 정리하는 사고의 정치함이 그렇게 보였다. 그럼, 왜 중국인은 축구에 열광할까란 질문에는 “그 문화에 가장 부족한 부분을 축구라는 스포츠의 정직성이 채워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축구 자체에 관해 그의 고견을 듣는 자리가 아니다. 스포츠 분야 세계 제1의 자리에 오른 중국이 왜 오직 축구에서만 설설 길까. 일종의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본래적 문화바탕과 축구의 부진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실체를 아는 데 축구는 무언가 대답을 내줄 듯한 대목이다. 그를 인터뷰했다.

-이상할 정도다. 중국 축구는 기이할 만큼 성적이 저조하다. 올림픽에서는 이제 확고한 1위 국가인데 중국의 축구는 왜 약한가.
“단체 스포츠에서는 중국이 늘 약하다. 올림픽 경기 중 중국이 금메달을 따는 종목은 대개가 개인 종목이다. 체조와 다이빙 등이 특히 그렇다. 탁구와 배드민턴의 복식 게임 등도 있지만 본격적인 단체게임은 아니다. 축구는 그와 상관 있다. 단체게임의 대명사가 축구인데, 그 점에서 스포츠에서 나타나는 ‘중국적인 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체게임, 좁혀 말하자면 축구에서는 중국이 왜 약할까.
“책임감이 부족하다. 내 자리를 끝내 지키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우직하게 이행하는 책임의식이 적다는 얘기다. 내가 중국에서 축구감독으로 일하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중국의 문화는 ‘거래와 타협’이 매우 발달해 있다. 우리들이 흔히 중국의 ‘관시(關係)’라고 부르는 것 또한 내 이익을 핵심으로 하면서 남과 거래하고 타협하는 문화의 소산이다. 축구에서도 이런 면모가 나타난다.”

-축구에서는 거래와 타협이 통하지 않을 텐데.
“그래서 경기력이 떨어진다. ‘남의 일에 신경 꺼라(別關閑事兒)’는 중국말이 있지 않나. 남의 일은 쓸데없는 일이요, 내가 간섭할 필요 없는 일이다. 내 개인의 이익을 핵심으로 모든 사안을 따지는 자세다. 잘 읽는 책이 삼국지연의다. 재미만 찾지 말고 자세히 들여다보라. 이익에 따라 늘 흩어지고 모이는 사람들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가. 그런 면모가 중국 문화에는 매우 강하게 발달해 있다. 선수들이 구단 또는 감독과의 관계 또는 동료들의 관계를 먼저 따진다. 빠른 속도로 펼쳐지는 축구라는 ‘전투’ 현장에서 생각이 복잡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한 것 아니냐. 개인적인 이익을 중심으로 해서 그런 것을 우선 생각하다 보면 축구가 잘 돌아갈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어떻게 했나. 축구감독으로서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인가.
“나 스스로 모든 ‘관시’를 없애기로 했다. 원리와 원칙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기 위해 나는 중국 사회의 그런 관시 그물망에서 독립해 혼자 섰다. 처음 부임한 충칭(重慶)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뒤 나를 ‘검은돈 거래(黑錢)’의 주역이라고 보도한 신문이 있었다. 일부러 내가 입은 양복의 색깔, 표제도 모두 시커먼 색으로 도배했다. 나는 제소했고, 긴 소송 끝에 20만 위안(약 4000만원)을 받아 가난한 농촌에 학교 건립기금 등으로 냈다. 중국 건국 이래 개인 명예훼손으로 승소한 첫 케이스라고 했다. 나는 스스로 정직하려 최대한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런 관시의 그물을 끊고 철저한 훈련과 승부로만 일관했다.”

-중국인은 당신을 ‘중국에 와 있는 외국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리그에서 많은 우승을 거둬서가 아니다. 관시에 물들지 않고 내가 가야 할 길을 곧게 가서 그렇게 보는 것이다. 귀국 전 중국 국영 CCTV가 나를 취재하면서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당신 이름은 중국인이 모두 안다’고 했다. 거래와 타협을 하지 않았고, 내가 정직하지 않으면 모두를 이끌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관했다. 그 점을 많은 중국인이 알아주는 것이라고 본다.”

-거래·협상·타협·관시 등의 문화와 당신의 진정성을 믿는 중국인들의 자세는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중국이 무섭다. 거래와 타협, 지독한 이기적 속성이 있으면서도 중국인의 마음은 정직함을 갈망하고 있다. 중국 축구시장은 엄청난 규모다. 그리고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정부의 지원도 엄청나다. 축구는 우직한 전략과 전술의 집합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스포츠의 꽃이다. 정직한 사람, 정직한 실력이 각광받을 수 있는 무대다. 중국의 문화가 비록 거래와 타협으로 점철해 있지만 사람들은 축구라는 정면 승부의 마당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 중국인들이 자국의 축구 수준에 실망하면서도 그 축구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다.”

-중국의 축구 열기는 의외로 높다.
“자국 축구 국가대표에 실망하지만 열기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유럽 4대 리그의 경기는 새벽시간에도 생중계하고, 밤중에도 중국인들은 대형 스크린이 걸린 술집 등에서 유럽 축구리그에 열광한다. 정직한 승부에 관한 뜨거운 열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축구에 대한 본인의 정의(定義)가 있다면.
“스타플레이어 한두 명에 의해 풀어가는 운동이 아니다. 선수 11명, 벤치와 그 주변의 스태프 40~50명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전쟁과도 같은 스포츠다. 변칙이 잘 통하지 않으며 조직력과 개인기가 한데 엉켜 전략과 전술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운동이다. 술수와 타협이 통하지 않는 운동이라는 얘기다. 중국인들은 유럽 축구의 그런 면모를 보면서 열광하며 자국의 축구 수준이 높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왜 유럽의 축구리그가 중국인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까.
“유럽 축구의 강점은 책임감이다. 룰에 따라 정면으로 승부하는 성향이 매우 강한 축구다. 가끔 그렇지 않은 장면도 나오지만 심판 판정에 불복하지 않으며, 팬들을 의식해 프로로서 책임을 다하는 축구다. 중국인들이 유심히 지켜보는 이유다.”

-중국이라는 곳의 문화로 이야기를 돌려 본다면.
“거래와 타협, 지독한 이기주의적 속성이 참 발달했다. 그렇게 생긴 ‘관시’는 중국 역사 수천 년을 이어 온 줄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점이 있다. 그 관시에만 의존해 중국을 볼 수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거래와 타협이 발달해 중국은 우선 술수와 모략 등이 판을 치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인 이익을 핵심으로 두고 상황을 저울질하는 경향도 매우 강하다. 그러나 그런 토대에서도 결국 진짜 중국인이 승복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결국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누가 진실하게 움직였는지를 본다. 좀 복잡한 얘기다. 그러나 그런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선수와 구단 등 주변과 갈등이나 마찰이 적지 않았을 텐데.
“복잡한 미로와 같다. 사람 사이의 ‘관시’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라서 그렇다. 중국은 장점이 많은 사회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좀 더 긴 호흡으로 조율하며, 직접적이면서 즉흥적인 충돌이나 갈등을 피한다. 원숙함이 매우 돋보이는 사회다. 따라서 싸움의 방법인 전략의 측면이 매우 발달했다. 13억 인구의 배를 곯리지 않으면서 신속하게 경제 성장을 이루는 측면이 우선 그렇지 않은가. 축구 경기 외에는 나도 그런 거래와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원칙에 있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비즈니스맨 등에게 ‘축구를 통해 본 중국’이라는 경험적 토대에서 해 줄 말이 있다면.
“가짜 제품, 짝퉁이 판치는 어지러운 사회라며 중국을 깔보는 사람도 많다. 산업화 과정에서 후발 주자들이 거치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도 한때 이태원에 가면 짝퉁 천지 아니었나. 그보다는 우수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균형감 있게 봐야 한다. 거래와 타협, 복잡한 관시의 그물망이 발달했지만 중국인의 마음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축구의 경우가 그렇다.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중국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런 중국인의 마음을 잘 읽어야 성공할 수 있
다.”

-동쪽으로는 칭다오(靑島), 서쪽으로는 충칭, 남쪽으로는 광저우(廣州), 북쪽으로는 베이징(北京) 등 중국 동서남북에서 네 팀을 이끌었다. 다양한 경험을 쌓았겠다.
“중국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매우 넓다. 운동에서는 체력적으로 볼 때 북쪽 출신이 날래고 강하다. 체력적으로 다소 약하지만 남쪽 선수들은 머리가 좋다. 꾀가 많고 주변 상황을 잘 살핀다. 한마디로 매우 다양하다. 중국을 알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나도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했다. 3년 동안 CCTV 뉴스채널 틀어 놓고 귀에 들어오든 말든 계속 들었다. 그래서 제법 중국어를 익혔다. 그러나 팀을 운영할 때는 잘 못 알아듣는 척도 자주 한다. 그래야 유리한 경우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보면 내가 중국에 원래 적응을 잘하는 편인지도 모른다.(웃음)”

유광종 kj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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