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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처럼 아무 흔적도 남기지 말자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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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우리 부부는 여러모로 다르다. 성격과 취향이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화성인과 금성인이 이렇게 지구에서 붙어 산다는 게 참 신기하다 싶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일치하는 게 하나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삶은 곧 죽음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인생은 희미하게 떠 있다 사라지는 새벽별이나 풀잎에서 증발하는 아침이슬처럼 허무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사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살지만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말자. 죽음은 걸치고 있던 무거운 옷을 벗는 것처럼 가볍고 친숙한 것이다. 무(無)에서 나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처럼 죽음 뒤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말자. 대충 이런 생각에서 우리 부부는 드물게 의견 일치를 보이는 것이다.

 해서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서로에게 다짐하고 아들과 딸에게 당부한다. 죽으면 화장(火葬)을 해서 바다에 뿌려 달라고. 유골함에 넣어 보관할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라고. 나무에 이름을 남기는 수목장도 원치 않는다고. 기일과 명절에 맞춰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번거로운 의례는 ‘노 생큐’라고. 생전에 엄마가 좋아하던 커피나 아빠가 좋아하던 술을 마실 때 가끔씩 생각해 주면 고맙겠지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이런 부탁을 하면서도 찜찜했던 것이 골분(骨粉)을 바다에 뿌리는 행위가 법에 저촉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내 소원 이루겠다고 남은 가족을 범법자로 만들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다행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됐다. 며칠 전 국토해양부가 골분을 바다에 뿌리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유해성 여부를 조사한 결과 골분 탓에 해양 환경이 오염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육지에서 5㎞ 이상 떨어지고, 양식장 등이 없는 곳에서 뿌리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2000년 33.7%에 그쳤던 화장 비율이 2010년에는 67.5%로 높아졌다. 서울 등 대도시 경우에는 80%를 넘는 곳도 있다. 화장해서 나온 골분을 유골함에 넣어 납골당이나 납골묘에 봉안할 수도 있고, 나무나 화초, 잔디 밑에 묻는 수목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장과 마찬가지로 시설이 한정돼 있다. 앞으로 화장 비율이 더 높아지면 묘지 문제만큼이나 유골 봉안 시설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에선 20여 년 전부터 친환경 자연장의 한 형태로 바다장(葬)이 보편화됐다. 3면이 바다인 우리도 바다장을 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인의 27.4%가 화장을 한 뒤 유골을 자연에 뿌리는 산골(散骨)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이 묘지와 납골당으로 뒤덮인 우리나라 장묘 문화를 개선하려면 양지바른 명당을 찾는 돈 많고 힘있는 사람들부터 바다장의 모범을 보이는 게 어떨까.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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