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유로존의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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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럽 경제위기가 진실의 순간(the Moment of Truth)에 한발 다가섰다. 그리스의 운명은 17일 재선거에서 판가름 난다. 긴축에 반대하고 구제금융 재협상을 요구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승리할 경우 그리스는 채무불이행(디폴트)→유로존 탈퇴의 수순을 밟을 공산이 크다. 반대로 신민당과 사회당이 승리할 경우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유럽 트로이카로부터 순조로운 구제금융을 받게 된다. 그리스는 유로존에 잔류하는 조건으로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긴축재정과 구조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스페인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서 10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반짝 효과에 그쳤다. 구제금융 규모가 위기를 진압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오히려 구제금융으로 인해 은행의 부채가 정부 부채로 옮겨가면서 스페인의 재정부실을 우려하는 비관론이 짙어졌다. 이로 인해 스페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위험수위인 6.75%로 치솟았고,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스페인 정부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국가신용등급을 ‘A3’에서 ‘Baa3’로 3단계나 깎았다. 정부 부채가 많은 이탈리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이자는 6%를 넘어섰다.

 유럽 주변부를 맴돌던 경제위기의 불길이 본격적으로 유럽 중심부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독일·프랑스 국채 수익률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대로 가면 유로존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불안심리 때문이다. 유럽이 지난 4년간 실시해온 위기대책은 한계가 드러났다. 부동산 거품 붕괴→금융기관 부실→구제금융→재정 악화→트로이카의 구제금융이라는 나선형 추락으로 이어졌다. 땜질 처방의 결과는 은행 부실을 정부 부실로 옮겼을 뿐이며, 유럽 경제는 한층 위축됐다.

 이제 전 세계는 독일을 쳐다보고 있다. 독일이 팔을 걷어붙이지 않는 한 유로존 위기를 풀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1947~1951년 서유럽 16개국에 엄청난 대외원조를 제공한 것처럼, 독일에 제2의 ‘마셜플랜’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유로존의 붕괴냐, 아니면 통화동맹을 넘어 금융동맹·재정동맹으로 나아가는 데 독일이 앞장서라는 것이다. 당연히 재정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독일은 “남유럽의 도덕적 해이를 방치한 채 우리만 뜯어먹겠다는 소리냐”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다. 유럽 경제위기의 해결은 독일의 선택에 달린 게 분명하다.

 이제 우리도 유로존 붕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감안해야 한다. 외환보유액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외국자금의 급속한 유출입도 정밀하게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유로존의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신속하게 재정·금융정책을 동원할 수 있도록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을 손질해야 한다.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의 흐름과 가계부채가 우려된다. 이미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그리스(61%)보다도 높고 스페인(85%)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우리도 언제 경제위기에 휘말리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풀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