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수 아름다움, 뉴욕 상류층 부인들에 40년 전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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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연구가 정영양 박사(오른쪽)와 현대미술가 제이슨 마츠. 뒤편의 그림 ‘서울 지하철 승객들’은 마츠가 이번에 내한해 지하철을 직접 타보고 그린 것이다. [김도훈 기자]

“한국 자수는 한 치의 바늘과 머리카락 굵기의 실로 이루어진 섬세한 ‘표현 예술’입니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이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며 한 땀 한 땀 간절한 마음을 수놓았죠. 이젠 제가 그 마음으로 자수를 비롯한 한국의 다양한 공예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도록 길을 만들겠습니다.”

 3일 오후 5시 서울 역삼동 예정갤러리에서 ‘설원문화재단 후원의 밤’이 열렸다. 설원문화재단은 한국 자수를 보전하고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위해 자수연구가인 정영양(75) 박사가 지난해 뉴욕에 설립했다.

 설원 정영양 박사는 70년대 뉴욕대 미술교육과 석사를 받을 때 한·중·일 3국의 고대 의상과 자수 발달사에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면서 여성의 취미에 머물렀던 자수를 ‘학문’으로 체계화시킨 주역이다. 2005년 출판한 책 『비단실』은 현재 조지워싱턴대의 교재로 쓰이고 있다. 그는 뉴욕에 머무는 40년 간 뉴욕의 상류층 부인들과 초·중·고 사립학교 학생들에게 한국 자수의 아름다움을 강의해왔다. 2004년에는 자수를 공부하며 모은 한·중·일 자수 제품 600점을 숙명여대에 기증, 정영양자수박물관을 개관했다. 지난해에는 뉴욕의 ‘아트 앤 디자인 뮤지엄’으로 자수 명장 김태자씨를 초청해 자수 시연을 하기도 했다.

 오늘 행사는 설원문화재단의 서울 활동을 공식 발표하는 자리인 동시에 정 박사의 뜻을 응원하는 이들이 함께하는 후원의 밤이었다. 아트 앤 뮤지엄 전 이사장인 바바라 토버와 세계 최대 규모의 자수·섬유예술작품 수집가인 크리스 홀,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씨 등이 참여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제이슨 마츠(58)의 그림 시연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키보디스트였던 마츠는 작곡가 겸 현대미술작가다. 16년 전 이웃사촌으로 정 박사와 인연을 맺게 된 그는 “정 박사를 통해 아름다운 한국문화에 눈을 뜨게 됐다”며 “어떤 방법으로든 설원문화재단을 돕고 싶었다”고 방한 이유를 밝혔다. 열흘 전 입국한 마츠는 서울의 지하철 9개 노선에 직접 탑승해 승객들의 이미지를 관찰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추구해온 주제인 ‘도시와 지하철 승객’에 맞춰 ‘서울 지하철 승객들’이라는 제목의 그림 10개를 그렸다. 마츠는 “어린 학생들은 아주 행복해 보였지만 어른들의 표정은 매우 심각하고 우울해 보였다”고 말했다.

 행사장에서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5인조 현대국악 밴드인 시나위 앙상블이 마츠가 작곡한 두 곡을 연주했다. 정 박사를 위해 만든 ‘young’과 한국과 미국의 문화교류를 축하하는 의미의 ‘ROKUSA’ 두 곡 모두 서양악기와 한국악기가 함께 쓰였다. 마츠는 “이 곡들을 위해 1년 간 한국 악기를 공부했다”고 했다. 10개의 그림은 이날 행사장에서 현장 판매됐다. 마츠는 판매액 전액을 설원문화재단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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