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최재천, 외상센터 비아냥 … 이국종 격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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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신성식
선임기자

25일 이른 아침이었다. 평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아주대 의대 중증외상전문의 이국종(43) 교수였다. 그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럴 수 있느냐. 민주당이 나서서 법안을 만들었는데…”라고 지적했다. 이 법안(응급의료법 개정안)은 과속차량 과태료의 20%(1600억원)를 2017년까지 사용해 16개의 중증외상센터를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야 정쟁에 희생돼 폐기 위기에 놓여 있다.

 그를 화나게 만든 건 민주통합당 최재천 국회의원 당선인의 트윗이었다. 최 당선인은 24일 저녁 트위터에 언론에 보도된 이 교수의 발언을 인용했다. “석해균 선장이 치료받을 때는 수십 명의 국회의원이 찾아와 중증외상센터 건립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하더니 이제와 나 몰라라 한다”는 이 교수의 발언을 전하면서 “이건 정부에 물어봐야죠”라고 썼다. 중증외상센터에 차질이 생긴 책임을 정부한테 돌린 것이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2월 법사위로 이송돼 먼지만 쌓이고 있고 우선 처리 논의 대상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이 교수는 “국회가 할 일을 안 한 건데. (최 당선인이) 비아냥거리는 것이냐”고 분개했다. 최 당선인은 “외상센터를 둘러싼 정부 부처 간 권한과 책임 조정 미비가 법안 처리를 지연시켰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그런 사정 때문인지 알아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 당선인은 “알아보나마나”라며 “17대 국회 법사위 간사 경험에 비춰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 부처 권한 조정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 교수의 분노는 비단 최 당선인만이 대상이 아니다. 외상센터 지원을 약속한 여야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특히 2008년 중증외상센터 발동을 걸었고 법안을 주도한 민주당에는 섭섭함이 크다. 이 교수는 “18대 국회 회기가 남았는데 의원들이 왜 출근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이념 법안’이 아니다. 생명을 구하자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제는 응급처방이 필요하다. 과속 과태료를 계속 갖다 쓰기로 하고 중증외상센터를 추진하고, 국회(19대)는 개원하자마자 법안 발의와 처리를 신속히 하면 된다. 그래야 해마다 외상센터가 없어 숨지는 1만 명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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