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불법 사채 신고도 못하는 상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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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임미진
경제부문 기자

닷새 전 금융감독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전화를 건 정신영(45·가명)씨. 대구 재래시장에서 옷가게를 한다. 돈이 급해 연리 200%가 넘는 일수에 손을 댔다. 그도 법정 최고 이자율이 39%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 금리엔 돈 빌려주는 곳이 없는 걸 어쩌랴. 가진 거라곤 가게 보증금 300만원이 전부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그다.

 신고 전화로 그의 고충은 해결됐을까. 아니다. 그는 연체 기록 때문에 저금리 서민 금융을 이용하지 못한다. 유일한 방법은 경찰 신고. 하지만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그를 시장 상인들이 말렸다. “당신 때문에 시장 전체가 일수 돈을 못 쓰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며 화를 내더라고요.”

 사흘 만에 5000여 통. 금감원 피해신고센터에 걸려온 상담 전화다. 사채에 시달리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정부도 잘 안다. 그래서 한 게 이자율을 낮춘 것이다. 법정 대부업 최고 이자율을 1년여 만에 10%포인트 끌어내렸다. 연 49%이던 최고이자율은 2010년 44%로, 지난해 다시 39%로 내려갔다.

 그런데 서민 고통은 그대로다. 예상했던 대로다. 그저 숫자만 손질해서 해결될 일이 애초 아니었던 거다. 3일 만난 전직 대부업자 한인호(58·가명)씨는 “대표적인 책상머리 정책”이라며 혀를 찼다. 우선 단속이 없다. 그러니 사채업자들이 아무리 고금리를 받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한씨는 “2년 영업하는 동안 단속반을 한 차례도 못 봤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불법 고금리가 성행하는 건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자들이다. 한씨는 “담보도 신용도 없는 이에게 연 39%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줬다간 원금 떼이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한씨에게 대출 받지 못한 이들은 바로 옆 사무실의 고리 사채업자에게서 연 100%가 넘는 고금리 사채를 빌렸다고 한다.

 지난해 한 여당 최고위원은 “연 30%까지 이자를 내리면 고리채 피해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고리채마저 없으면 어떻게 사나’ 하는 서민들이 있는 한, 허울 좋은 얘기일 뿐이다. 한씨 말이 자꾸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다. “일제 신고 받고 책상머리 대책 내놓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제발 단속 좀 제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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