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구대 비리’ 또 자정 결의만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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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 강남경찰서 논현지구대(현 파출소)에 소속됐던 경찰관 50여 명이 관내 유흥업소들로부터 14억여원을 상납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개인 비리로 처벌받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번처럼 지구대 단위의 비리 정황이 드러난 적은 없었다. 경찰의 부패가 조직적·일상적으로 이뤄져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논현지구대가 담당한 곳은 대표적인 유흥업소 밀집지역이다. 성매매 등에 대한 단속권을 가진 지구대가 업소들로부터 매달 6000만원씩을 뜯었다는 건 불법 영업 단속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얘기다. 대체 비리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란 말인가. 경찰은 2009년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단행되기 전 일어난 일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런 관행이 사라졌다고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경찰관 한 명을 ‘총무’로 정해놓고 매달 ‘월정(月定)’ 방식으로 받은 돈을 나눠 가졌다는 점에서 상부로의 상납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은 그간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정 결의대회를 열거나, 관련자 징계나 태스크포스(TF)팀 구성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경찰 자체로는 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관련자 전원을 엄단하는 건 기본이다.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김영란)가 연내 제정을 목표로 추진 중인 ‘김영란 법’, 즉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가칭)’이다. 이 법안은 부정한 청탁 행위를 엄격히 제재하고 공직자가 금품을 받을 경우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선 경찰의 비리는 공직사회의 청렴도 수준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이 국제투명성기구(TI)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2010년 39위에서 지난해 43위로 내려앉은 데는 공직 비리의 영향도 작지 않다. 정부는 더 이상 경찰 조직이 돈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부패 척결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