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총선 후 경제 과제 이것만은 챙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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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경제 악재가 쏟아지고 있다. 스페인 구제금융설, 미국 고용지표 부진, 중국 수입둔화 등 3대 경제권이 모두 심상찮다. 가장 우려되는 게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가능성이다. 물론 이는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틈만 나면 고개를 내미는 바람에 세계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번에도 스페인의 경제 및 재정 악화가 확인되면서 두 나라의 국채 금리가 동반 상승했다.

 아직은 구제금융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 경제의 불안요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위기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려면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뼈를 깎는 긴축이 선행돼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별로 없다. 유럽연합의 구조적 한계도 있다. 유럽 경제는 최소한 위기가 잠복된 상태에서 장기간 요동을 칠 것이다. 자칫 위기로 비화될 수도 있다. 유럽이 나쁘다면 미국과 중국이 버팀목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이것도 기대하기 힘들다. 미국은 고용지표 부진이, 중국은 수입 둔화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경제가 불확실하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큰 악재다. 이런 때일수록 자체 위기대응능력을 극대화해야 하는데 이것마저 여의치 않다. 총선 후 정권 말 레임덕이 가속화되면 정부의 정책 추진동력이 급속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때일수록 정부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중심을 딱 잡고 선제적으로 대처하면 설령 경제위기가 닥쳐와도 우리 경제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이제는 그럴 힘과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해야 할 제일의 과제는 경계심이다. 위기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갖고 금융 및 실물 경제의 흐름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부실 요인을 미리미리 제거하는 등 선제적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 당장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의 부실을 과감히 도려내는 구조조정을 서두르길 당부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등장한 가계부채 문제는 물론 부실 요인이 커지고 있는 해운·조선·건설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시급하다. 반드시 통과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야 간 정쟁으로 처리되지 않았던 법안도 속히 통과돼야 할 것이다.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중소혁신기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편의점에서 가정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안 등은 여야가 다툴 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또 어설픈 경기부양에 대한 유혹도 떨쳐야 한다. 지금은 위기 관리에 치중하고 그간 벌여 왔던 정책들을 마무리할 때지 대선을 앞두고 경기를 관리할 때가 아니다. 치적 강조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 경기를 부양하는 정권 말의 관행을 단절해야 한다.

 총선 후 폭발할 포퓰리즘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도 정부의 주요 과제다. 국가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어선 마당에 무분별한 지출 낭비는 막아야 한다. 물론 정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정치권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 다른 건 몰라도 위기 관리에는 여야가 따로여선 안 된다. 위기가 터지고 나서 후회하는 건 1997년 외환위기 한 번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