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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광팬들의 한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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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김용민 후보가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완주할지 말지는 그의 자유다. 그의 막말을 거론하며 “패륜 후보는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다. 김 후보는 ‘이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터프한 표현을 쓴다’고 이미 밝혔다. 그의 저질 발언은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일종의 전략이라는 얘기다. 다만, 과거의 무차별 발언이 뜻하지 않게 공개돼 곤경에 처했을 뿐이다. 그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심판은 온전히 서울 노원갑 지역구민들의 몫이다.

 “민주당은 김 후보를 출당하라”고 연일 파상 공세를 펴는 새누리당의 할리우드 액션도 우습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김 후보가 버텨야 메가톤급 이슈를 선거 당일까지 몰고가 표를 모을 수 있다. 겉으로는 사퇴를 요구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가주기를 바라는 이율배반의 정치공학이다.

 어찌 됐든 ‘김용민 부조리극’은 김 후보가 중도 사퇴하든지, 11일에 표로 심판 받든지 둘 중의 하나로 막을 내리게 된다. 김 후보가 한국 선거 역사상 최악의 욕설과 막말을 늘어놓고도 국회의원이 되는 기록을 세울지, 아니면 입 잘못 놀린 사람의 몰락 드라마를 쓸지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관전자 입장에서 그의 앞날은 알 바 아니다.

 정작 걱정되는 건 김 후보 지지자들의 일그러진 추종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지금 진영(陣營) 싸움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친(親)김용민 진영에서는 ‘김용민이 무조건 옳다’는 논리가 모든 걸 지배한다. 김 후보가 ‘나는 꼼수다’를 통해 배설한 말들이 그들의 진영에 무슨 공을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는 광팬들의 극성쯤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인터넷에 미군의 만행을 열거한 뒤 ‘이런 미국에 그 정도 욕하는 게 뭐가 문제냐?’라고 주장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건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자는 복수의 ‘한풀이’ 정서이기 때문이다. 일부 미군이 벌인 행패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 해도 비슷한 패악질 조롱이 뭐가 잘못이냐는 식의 논리에서는 극단주의자들의 DNA가 엿보여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비판하면 보수든 진보든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집단 공격에 나선다.

 왜 김씨 추종자들이 이런 극도의 증오에 저당 잡히게 됐을까. 원인은 다양하다. 숨막히는 경쟁, 한번 추락하면 다시 오를 수 없는 비정한 사회, 권력의 부패 등등. 이 모든 원인의 밑바닥에는 실패한 리더가 있다고 본다. 여야를 막론하고 부정과 부패, 거짓말을 일삼는 리더로는 이런 반목과 갈등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27년간 로빈 섬 감옥에 갇혔던 넬슨 만델라는 그 긴 시간 동안 복수보다는 용서의 쟁기를 갈았다. 우리도 증오의 칼을 녹여 용서의 쟁기를 만드는 리더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귀중한 한 표는 이럴 때 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