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0% 올랐다지만… 네 가지 불편한 진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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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호 22면

현재 주식시장을 강세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코스피가 올 들어서만 10% 올랐다.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작년 가을의 바닥부터 따지면 반 년 만에 25%나 뛰었으니 제법 활황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작년 상반기에 기록한 통산 최고치를 불과 10% 남겨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의 분위기는 흥겹고 유쾌하지 못하다. 근저에는 다음과 같은 불편한 진실들이 깔려 있다고 본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첫째, 주식시장의 주도권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넘어가 있다. 이러다 보니 꼭 남의 잔치에 와 있는 것 같은 씁쓸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주가가 오르자 개인투자자는 줄기차게 펀드를 환매한다. 자산운용사들은 추가적인 투자에 나서기보다 계속 주식을 내다 팔아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에 바쁘다.

기관투자가는 어떤가.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주식 보유를 꾸준히 늘려가는 기관투자가가 별로 없다. 이렇기 때문에 국내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1000조원을 훨씬 넘어섰는데도, 수요 기반이 취약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외국인이 짐을 싸면 금융시장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 개인투자자의 증시 이탈은 취약해진 중산층 가계 자금사정을 반영하는 듯해 걱정스럽다. 우리 국민은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경기침체, 일자리 부족·불안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이나 펀드 투자에 적극 나서기 어렵다. 건실한 중산층은 줄어드는 반면 거액 자산가는 늘고 있다. 하지만 부자들은 부동산 선호와 원금 보존 추구 성향이 중산층보다 훨씬 강하다. 주식시장에서 중산층의 공백을 메우기 힘든 까닭이다.

둘째 불편한 진실은 삼성전자의 독주다. 삼성전자가 국내 주식시장의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70% 오른 덕분에 코스피는 2000선을 탈환했다. 하지만 나머지 종목들을 보면 상당수 주가가 여전히 약세다. 개인투자자가 많이 뛰어드는 코스닥지수는 오히려 연초보다 낮다. 따지고 보면 지난 6개월은 시장이 오른 것이 아니고 삼성전자가 오른 것이다. 코스피 상승분의 절반 이상은 삼성전자 몫이다. 개인투자자들에게 삼성전자는 그림의 떡과 같은 존재다. 손이 쉽게 나가지 않는다. 한 주만 사도 130만원이고, 10주를 사면 1300만원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지금 코스피가 2000선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한다. 부동산 시장도 이런 적이 있었다. 수년 전 초고가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띤다는 말이 나왔지만, 중산층이 보유한 평범한 아파트는 이런 상승세에 동참하지 못했다.

일러스트=강일구

셋째는 내수주의 장기 침체다. 내수 업종이 주식시장에서 소외된 것은 꽤나 오래됐다. 통신 주가는 10년 전의 3분의 1 토막이 났고, 은행 주가는 7년 전과 비슷하다. 증권주 중에서는 25년 전보다도 낮은 종목이 수두룩하다. 건설주는 종목 자체가 너무 많이 사라져 이제 남아 있는 상장사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지경이다. 제약·유통 주식 중에는 이제 투자자들의 관심권역에서 멀어져 버린 것들이 많다. 그나마 내수주 가운데 주가가 호조인 종목은 게임·호텔·화장품·제과·카지노 사업을 주력 분야로 삼은 기업들이다. 이들 역시 내수시장에서의 경쟁력 때문에 주가가 오른 게 아니다. 중국 진출에 성공해 수출 실적이 늘었거나, 중국 관광객의 급증으로 영업실적이 개선된 경우가 많다. 물론 이는 한국 경제가 어느 정도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 가계부채 급증으로 구매력이 줄었다는 점,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정체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 반영된 결과이긴 하다. 하지만 정부 규제가 내수주 침체에 한몫한다는 지적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내수 기업들은 물가를 잡겠다는 정부의 각종 가격 통제와 행정 규제에 시달린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정부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수출 기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수출 대기업만 잘나가는 경제는 분명 절름발이 경제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가 해외에서 잘나가는 것과 한국 경제가 건강하고 활력이 있다는 것은 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내수 경제의 회복 없이는 한국이 진정한 선진 경제가 될 수 없다.

넷째 불편한 진실은 우리 증시의 중국 경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올 들어 경제 회복이 두드러진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런데도 국내 기업 중 미국 경제 회복의 후광 효과를 보는 곳은 삼성전자 등 몇몇 정보기술(IT) 기업뿐이다. 한편으로 중국 경제 침체의 영향권에는 화학·에너지·철강·기계·조선·해운·태양광 등 분야의 수많은 기업이 속해 있다. 기관투자가들은 언제부턴가 한국 경제보다 중국 경제의 동향에 촉각을 더 곤두세운다. 한국 경제가 좋아질 때보다 중국 경제가 좋아질 때 실적이 개선되고 주가가 오르는 기업이 많아진 때문이다. 중국 경제도 언젠가 본격적인 불황을 겪을지 모른다. 그때 한국 경제가 겪을 심한 홍역을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중장기적으로 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한국 경제의 잠재 위험을 낮추는 데 꼭 필요하다.



이원기(53) KB자산운용 대표를 지내고 2010년부터 영국 PCA그룹 산하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대표를 맡고 있다. 메릴린치증권 리서치센터장 시절인 2000년대 초반 한국경제 10년 강세론을 펼쳤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미 UCLA MBA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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