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일 뿐? 나이는 나이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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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야구 천재’는 언제부터 늙기 시작했을까. ‘바람의 아들’은 언제부터 느려졌을까.

 이종범(42·KIA)의 은퇴 선언으로 야구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종범은 2007년 말부터 구단으로부터 은퇴 압력을 받았지만 “나는 젊은 선수들과 실력으로 경쟁할 수 있다”며 거부해 왔다. 30대 후반에도 그의 기량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3월, 선동열(49) KIA 감독이 만 42세가 된 이종범을 멈춰 세웠다. “현재 실력으로는 1군에서 뛰지 못한다”고 못 박자 이종범은 지난달 31일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누구보다 발 빠른 이종범이지만 시간보다 빠를 순 없었다. 최고였던 기량이 30대 중반 들어 꺾이기 시작했다. 마흔 살을 넘기자 과연 이종범이 현역으로 뛸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과연 이종범의 신체나이는 몇 살이기에 반강제적인 은퇴에 몰렸을까.

 이종범과 이만수(54·SK 감독), 장종훈(44·전 한화), 양준혁(43·전 삼성) 등 현역 시절 최고의 활약을 했던 야수들의 기록을 보면 35세를 전후해 성적이 급격히 하향 곡선을 그렸다. 이종범은 35세였던 2005년까지 연평균 17.8개의 홈런을 날렸지만 2006년부터 여섯 시즌 동안은 총 16개의 홈런만을 기록했다. 34세였던 2002년까지 연평균 111.9경기에 출장했던 장종훈은 이듬해부터 3년 동안 평균 53.3경기 출장에 그쳤다. 꾸준히 2할대 후반 타율을 넘기던 이만수 감독도 35세가 되면서부터 2할대 초반으로 타율이 곤두박질쳤다. 양준혁은 35세 이후 딱 한 번 20홈런을 넘겼다.

 한국체육대학 오재근(스포츠한의학) 교수는 “운동선수의 신체기능을 검사할 때 35세를 기준으로 항목을 나눈다. 35세 이전의 선수는 체력을 위주로 보지만 35세가 넘어가면 심장과 폐, 혈관의 기능 등을 관찰한다. 신체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병곤 전 LG 트레이너 역시 “신체나이는 개인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다르지만 그 젊음은 30세 초반이 지나면 대부분 소진된다”고 말했다.

 이종범은 35세가 넘어서도 여섯 시즌을 더 뛰었다. 그동안 연평균 100경기(100.67경기)를 뛰었다. KIA 구단의 장세홍 트레이너는 이종범의 롱런 비결로 ‘유연성’을 꼽았다. 그는 “이종범은 마흔이 넘어서도 30대 중반 선수의 유연성을 유지했다. 덕분에 훈련 중에 부상을 입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종범은 30대 초반 선수들과 같은 양의 근력운동을 소화해 하체의 신체나이도 실제 나이보다 3~4살 어렸다”고 했다.

 그러나 주니치(일본) 시절 입은 부상 때문에 오른 팔꿈치의 신체나이만큼은 실제 나이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병곤 전 LG 트레이너는 “부상을 입는 순간 다친 부위의 노화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점점 떨어지는 순발력(반응속도)도 은퇴의 한 원인이 됐다. 장세홍 트레이너는 “반응속도는 훈련으로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종범은 타고난 유연성과 치열한 노력으로 ‘야구 정년’인 35세에서 6년을 더 뛰었지만 더 이상 세월의 벽은 넘지 못했다.

 윤승호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장은 “신체의 노화는 정신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진행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신체의 노화를 늦출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분명 있다”고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은 신체에 관해서 만큼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유선의·손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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