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거래 7월부터 자율규제 요구 … 김동수, 칼 뽑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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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현대중공업·GS·한진·한화·두산 등 6개 그룹 대표가 29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과 만났다. “일감 몰아주기를 자제하겠다”는 자율선언을 하기 위해서다. 지난 1월 16일 4대 그룹(삼성·현대차·SK·LG) 간담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된 대기업과 김 위원장의 만남이다.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 모인 그룹 대표들은 긴장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 원탁을 가운데 두고 최원길 현대중공업 사장, 신은철 한화 부회장, 서경석 GS 부회장, 김 위원장, 이인원 롯데 부회장, 이재경 두산 부회장, 서용원 한진 대표이사 순으로 둘러앉았다. 예정보다 10분가량 늦게 도착한 김 위원장은 준비해 온 원고를 읽었다. “10대 그룹의 광고·시스템통합(SI)·물류·건설 분야의 내부거래 규모는 18조원에 달합니다. 이 중 상당한 물량이 중소기업에 개방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룹 대표들이 메모지에 내용을 받아 적었다.

 참석자들은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얘기로 말문을 텄다. “요즘 경영이 어렵습니다.”(신은철 부회장) “지난해보다 못할 겁니다.”(이인원 부회장) “미국은 좀 나은데 중국이 좋지 않습니다.”(이재경 부회장) 이에 김 위원장은 “ 유럽이 최악은 면했다고 기대하던데요”라고 반문했다. 이후 간담회는 비공개로 40분가량 진행됐다.

 간담회 뒤 6개사 대표들은 별말 없이 자리를 떴다. 김 위원장은 “만족스러운 자리였다”고 했다. “다들 2분기부터 일감 몰아주기라는 오해가 없도록 최대한 경쟁입찰을 확대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이 할 만한 분야엔 적극적으로 일감을 나누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법적인 규제가 아닌 일종의 권장사항”이라면서도 “ 국민과 중소기업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잘 지켜지는지 공정위가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간담회 직후 6개사가 각각 발표한 자율선언 내용은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광고·SI·물류·건설 분야에서 2분기부터 점진적으로 경쟁입찰을 늘리겠다” “중소기업에 사업참여 기회를 확대하겠다” “내부거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이다. 앞서 1월 16일 ‘일감 몰아주기 자제’를 약속했던 4대 그룹을 포함해 10대 그룹이 모두 자율선언을 내놨다.

 공정위는 이날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회사의 거래상대방 선정에 관한 모범기준’도 발표했다. 자율선언과 내용은 거의 같지만, 10대 그룹은 물론 상위 47개 대기업집단까지 7월 1일부터 모두 적용된다는 게 다르다. 일감 몰아주기가 심한 4개 업종(광고·SI·물류·건설)에선 구체적인 경영상 사유가 없는 한 경쟁입찰을 하도록 했다. 2010년 47개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 규모는 4개 분야에서만 총 27조원에 달했다. 삼성이 6조25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이어 현대차, 포스코, 롯데그룹 순이었다.

 자율선언이나 모범기준을 어겼다고 기업이 법적으로 제재를 받는 건 아니다.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서울대 박상인 행정대학원 교수는 “경쟁입찰을 원칙으로 한다고는 했지만 빠져나갈 방법은 많다” 고 말했다. 실제 6개 그룹은 “보안에 관련되거나 긴급한 사업, 또는 효율성이 저해되는 경우는 경쟁입찰에서 예외로 한다”는 입장이다. 연세대 신현한 경영학과 교수는 “경쟁입찰을 해도 내부 계열사의 경쟁력이 워낙 높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일감을 나눠주는 효과를 거두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기업의 의사결정만 느려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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