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강운구의 쉬운 풍경 <2> 컬러다, 매화 피는 봄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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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전남 광양 다압, 1991

요즘은 ‘천연색 사진’이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말이 ‘컬러 사진’으로 되었다가 이젠 그저 ‘사진’이다. 거의 모든 사진이 ‘컬러’이므로 굳이 그 말을 달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진이 ‘흑백’뿐이었을 때 등장한 ‘천연색’은 신기하고 황홀했었다. 지금은 오히려 ‘흑백 사진’이 보기 드물므로 ‘흑백’이라고 구별해서 부른다. 지금 ‘천연색 사진’(또한 위풍당당하던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도)이란 말은 시대착오인 듯한 느낌을 준다.

한 단어가 갑자기 엉뚱한 곳으로 비약하게 한다. 휴대전화 받을 때 뜨는 이 시대의 문장 “행복하세요~”(‘해피하세요~’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다)를 이따금 볼 때마다 첨단기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시대착오가 아닐까 했다. "행복하세요?”라면 모를까. 전화 걸 때마다 상대가 누구건,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든 가리지 않고 그런 말을 해대는 사람들은 좀 이상하다. 그래서 살짝 경멸해 왔다. 며칠 전에 만난 조카가 “…큰아버지 답지 않게 ‘행복하세요’가 뭡니까?”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더니, 자기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했다. 신호가 가자 보여주는 화면에 ‘큰아버지’ 그리고 그 아래에 ‘행복하세요~’가 떴다. 깜작 놀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경멸하는 짓을 하고 다닌 것이었다. 조카에게도, 한밤중에 ‘흑흑’하는 소리를 죽이며 “선생니임 세상이 너무 무거워요…”하던 후배에게도 나는 ‘행복하세요~’를 마구 날렸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말은 휴대전화를 바꿀 때 점원이 무단히 깔아준 것이었다.

지금의 ‘컬러’이거나 예전의 ‘천연색’이거나 간에 천연 그대로 색을 재현하는 사진은 거의 없다. 그것은 렌즈, 필름과 인화지(이것들은 거의 멸종직전이다), 인쇄 방법, 종이의 질과 그 밖의 많은 변수(디지털에서는 모니터)에 따라서 같은 사진의 색깔이 다 다르게 재현된다. 그러므로 다 비슷한 상징적인 색일 뿐이지 바로 그 천연 그대로의 색은 아니다. 흑백 사진은 그에 견주면 훨씬 더 추상적이다.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그 추상적인 흑백을 보고 본디의 색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흑백 사진을 더 좋아한다. 그 모든 제작 과정은 내 손에 익숙하며, 그리고 컬러로보다는 쓸데없는 잔소리를 훨씬 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은 컬러로다. 그렇더라도 울긋불긋한 잔소리는 덜하다. 환한 매화꽃 보고 “행복하세요~”.

강운구(71)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빌린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은 이래 50여년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아왔다. 한국적 시각의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 영상을 개척했다. 글을 무섭게 잘 쓴다는 평도 듣는다. 『경주 남산』 『우연 또는 필연』 등의 사진집과 『시간의 빛』 『자연기행』 등 사진 산문집, 그리고 『강운구 사진론』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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