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사느냐 죽느냐… 햄릿, 자살 아닌 복수 고민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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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안경환 지음
서울대출판문화원
384쪽, 1만8000원

법과 문학은 닮았다. 삶의 온갖 갈등을 다룬다. 물론 차이는 있다. 법은 논리에, 문학은 상상력에 기댄다. 그렇다면 정의는 어디쯤 있을까. 법의 논리만으로, 혹은 문학의 상상력만으로 정의를 해명하기 어렵다. 법의 경직성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낼 때, 온전한 정의가 가능할 테다.

 이 책은 법과 문학이라는 두 바퀴로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1564~1616)의 작품을 질주한다. 20년 넘게 영미법을 가르쳐온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12편을 법률가의 시선으로 파헤쳤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 말 영국의 사회적 풍경은 어떠했나. 그야말로 소송의 천국이었다. 연평균 100만 건 이상의 소송이 벌어졌고, 약 400만 명이 송사에 휘말렸다.

 셰익스피어라고 달랐을까. 셰익스피어가 이런저런 송사를 벌였다는 사실은 적잖은 문헌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셰익스피어는 1604년 필립 로저스라는 이웃을 소액법원에 제소하는 등 3건의 소액소송을 벌인다. 법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리 소액이라도 자신의 권리를 집요하게 주장하는” 그의 태도를 볼 때, 작품에 녹아있는 법률가적 세계관이 어렵잖게 해명된다.

 이를테면 저 위대한 비극 ‘햄릿’을 보자. 저자는 햄릿의 독백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를 법률가적 시각으로 해석한다. 저자의 설명이다.

 “이 독백은 자살이 아니라 복수를 위한 고민이 아닐까. 그렇다면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원시적인 보복 감정을 절제하기 위한 노력으로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그의 복수심은 견고했고, 살인죄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치밀한 법률가적 준비를 했다. 그 점에서 ‘햄릿’은 원시적인 사적(私的) 복수에서 법의 지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개인적 고통과 불확실한 결과를 그린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헨리 6세’ ‘리어 왕’ 등 셰익스피어 명작 12편을 분석한다. “법을 빼고 읽어도 문학이 되지만, 법과 함께 읽으면 더욱 큰 문학과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 문학과 법이란 쌍안경으로 인간 세계를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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