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죽어버리겠다”던 14살 아그네스 … 삶이 다시 손내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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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나의 완벽한 자살노트
산네 선데가드 지음
황덕령 옮김, 놀
264쪽, 9800원

제목, 섬뜩하다.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에 어울릴 법한 제목을 단 이 소설은 14살 소녀 아그네스의 이야기다. 12일 앞으로 다가온 자신의 생일날 목숨을 끊겠다고 마음을 먹은 아그네스는 ‘사후 성명’과 같은 자살 노트를 쓰기 시작한다.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 ‘확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14살의 소녀가 자살을 결심한 이유는 뭘까. 질풍 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소녀의 치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이내 반전이 시작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소녀의 결심, 치기가 아니다. 집단 따돌림(왕따)에 시달려 막다른 골목에 이른 선택이다. ‘악당 퀸카 무리’의 괴롭힘과 왕따에 시달리는 아그네스의 목소리를 선생님도 부모님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는 척하는 것, 뭔가 잘못될 때마다 내 책임인 양 행동해야 하는 것. 나는 너무 힘들다”며 죽을 날만 세고 있는 아그네스. 하지만 반 친구들이 자신을 이해해준 단 한 사람인 제이콥 선생님에게 성추행 누명을 씌우자 본격 반격에 나선다. 가해자에게 통쾌한 응징을 한 뒤 계획대로 진통제 100알을 입 안에 털어 넣지만 자살 시도는 미수에 그친다.

 살아난(?) 아그네스는 말한다. “나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결정한 일이니까. 겁쟁이처럼 다 내던져 버리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다. 그냥 사라지면 되는 거니까. ‘더 이상은 없어’ ‘더 이상은 못 해’라고 말해버리는 건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내 삶은 내 것이다. 내게는 내 삶에 대한 책임이 있다. 나는 계속해서 그 책임을 짊어지고 걸어가기로 결정했다”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은 것이다.

 “집단 따돌림이 가해자 입장에서는 별 의미 없이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당하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고민하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는 제이콥 선생님의 이야기는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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