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시한 욕실 만들기 ① 크리에이터 3인이 말하는 나의 욕실 라이프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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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디자인 스튜디오 모우리(MouRi)를 운영하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씨. 그에게 화장실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아늑하고 사적인 공간이다.②철학박사 조정옥씨는 화장실에서 영감을 받거나 재미있는 물건을 발명한다. 얼마 전엔 악보 보면대를 발명했다. 못 쓰는 줄이나 리본을 집게와 연결시켜 만든 휴대용 보면대다.③티켓몬스터의 콘텐트 기획랩장 김회동씨는 스스로를 “깨끗하고 좋은 욕실이 부럽긴 하나 집에 있는 익숙한 화장실에 순응하며 사는 평범한 남자”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업무에 지쳤을 때 숨을 고르기 위해 화장실을 찾는다.

아침에 눈을 떠 처음 향하는 곳은 화장실이다. 저녁엔 집에 돌아와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 볼일을 보다 아이디어가 샘솟기도 하고, 목욕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절로 노래를 흥얼거리는가 하면 남모르게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화장실에선 항상 많은 일이 벌어진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철학가, 온라인 콘텐츠 기획자. 이들 세명의 크리에이터에게 ‘나의 욕실 라이프스타일’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31·종로구 평창동)씨에게 화장실은 아늑해야 하는 공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양씨는 직업의 특성상 출장이 잦다. 1년에 4번은 프랑스와 밀라노, 독일에서 열리는 디자인 박람회를 방문한다. 그 때마다 그는 향초와 바디크림, 그리고 아끼는 도기인형을 챙긴다.

“출장을 가서 유럽의 오래된 호텔에 묵게 될 때가 있어요.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화장실이죠.”

그는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물에 젖지 않는 플라스틱이나 스틸 의자를 찾아 화장실의 욕조 옆에 가져다 놓는다. 의자 위에는 장미향이 나는 향초와 도기인형, 읽을 책을 가져다 둔다. 낯선 호텔방을 나만의 공간으로 꾸미고 확보하는 일이다. 유난스럽다는 말도 듣지만, 이 물건들이 있어야 집에서처럼 편안하게 쉬며 재충전이 가능하다.

양씨는 화장실이 ‘집 전체의 품격’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이달 말에 발간하는 그의 책 『사계절 홈 인테리어』에서 그는 ‘화장실은 오감을 만족시켜야 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강조한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냄새다. 악취가 나는 화장실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욕실용 붙박이 가구는 최대한 스마트하게 짜는 게 포인트다. 두루마리휴지부터 청소용품, 세안과 목욕용품에 수건까지. 놓여지는 물건이 많기 때문이다. 예쁘기만 해서도 만족할 수 없다. 멋진 세면대라 해도 수도꼭지를 돌렸을 때 물이 사방으로 튀면 찝찝하다. 반짝반짝 닦인 변기여도 앉았을 때 차가우면 불쾌하다. 세면대에서 물이 잘 나오는지, 비데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감동 여부도 달라진다.

● 철학박사 조정옥

조정옥(54·경기도 오산시)씨는 철학박사다.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뮌헨 대학에서 6년 동안 유학했다. 각종 미술서적을 번역하고 철학서를 저술했다. 요즘엔 플루트 연주에 빠져 있다. 2년 전부터 배우다 말기를 반복했는데 최근 갑자기 실력이 월등해졌다. 보통은 공원이나 빈 강의실에서 연습하는데, 얼마 전 문득 ‘화장실에서 연주하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화장실은 기분도 좋게 만들고 공명도 좋아 멋진 연주가 될 것 같더군요. 물론 사람들에게 항의는 좀 받겠지만요(웃음).”

요즘 조씨는 바타이유의 철학에 빠져 있다. 프랑스 철학가 바타이유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의 부패다’라고 말했다.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는 오줌과 똥 사이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그는 “이 두 철학자를 통해 본 화장실은 자연의 거대한 순환 고리”라고 설명했다. 사람은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고 다른 생명체의 재료가 된다. 죽기 전에도 우리 몸은 죽은 세포를 매일 내보낸다. “어떤 사람을 15일 만에 보면 새사람을 보는 셈”이란 조씨는 “세포가 100% 바뀌는 주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몸의 죽은 부분을 내보내는 곳이 바로 화장실이다. 사람이 먹은 것은 배설물이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에게 바치는 생명의 재료다.

또한 화장실은 예술의 장소다. 벽의 낙서는 그림이 되고, 몸이 내보내는 생명의 재료가 내는 소리는 음악이 된다. 생명의 재료는 조각품이다. 하지만 조각품을 남에게 보이면 실례다. 본인만 알고 즐겨야 한다.

● 티켓몬스터 콘텐트 기획랩장 김회동

김회동(29·영등포구 신길동)씨는 소셜커머스업체 티켓몬스터의 콘텐트 기획랩장이다. 매일 끊임없이 올라오는 150~200건의 딜(소셜커머스에 올라오는 상품)을,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매력적인 카피 문구를 뽑아 소개하는 일이다. 그럴듯한 카피를 뽑기 위해 짧은 시간 안에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카피가 떠오르지 않을 때, 혹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김씨는 아이패드를 들고 화장실을 찾는다. “어르신들이 신문이나 잡지를 들고 화장실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는 김씨는 “책이나 신문보단 온라인에 접속이 되는 휴대전화나 아이패드가 익숙하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화장실은 숨을 고르는 공간이다. “숨을 참으며 계속 뛸 수는 없는 일”이라는 그는 업무 중에 틈틈이 화장실을 찾아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패드로 뉴스를 보고, 웹서핑을 하다 보면 꽉 막혀 있던 업무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일의 연속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는 김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은 그나마 딴 짓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가십 기사를 읽다가 재미있는 키워드를 발견하고 우연히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오락은 하지 않는다. 오락에 빠져 집착하게 되면 그나마 쉴 시간도 없어진다.

얼마 전 티켓몬스터 딜에 아우디 자동차가 나온 적이 있다. 처음에는 고급 외제 자동차의 카피를 어떻게 풀면 좋을까 고민했다. 고심 끝에 나온 카피는 ‘아우디가 이토록 당신 곁에 가까이 다가온 적이 있었습니까?’였다. 꿈의 자동차를 가질 기회가 가깝게 다가왔다는 점에 주력했다. 화장실에서 낸 아이디어였다.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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