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강운구의 쉬운 풍경 <1> 오래된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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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 내설악, 1973

길을 보면 떠나고 싶다. 갔던 길도 또 가보고 싶고, 다른 길로도 가고 싶다.

그간 어지간히 쏘다녔지만, 이 땅에서 못 가본 길도 많다.

세상은 길부터 바뀐다. 길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빠르고 빠르게 빨리 가려고 좁은 길은 넓히고, 굽은 길은 곧게 펴고, 높은 길은 굴을 뚫는다. 그래서 그런 길이 지나가는 땅의 풍경도 빨리 바뀌고 바뀐다.

내설악에서도 깊은 골짜기에 있는 오솔길이야 바뀔 일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사진은 옛적의 길이고 요즘은 그 자리에서 이 길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나무들이 숲을 이뤄 가린 그 속의 길은, 그간 더 발달한 사람들이 무리 지어 열심히 자주 다녀서 빤빤하게 넓어졌다.

그간 이런저런 길을 걷고 헤매며 많은 풍경들을 보았다. 케케묵은 말로 하자면 안복(眼福)을 누렸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거나 기웃거릴 핑계가 확실하게 있었다. 그냥 보고 흘려버린 기억 속의 풍경이 더 좋지만, 그건 꺼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해묵은 파일을 뒤진다. 쉬운 풍경, 그저 눈요기라도 될 만한 이 땅의 풍경들을 꺼낸다.

내설악 깊은 골짜기에는 때 없이 눈이 오기도 한다. 그래도 봄은 올 때 온다.

강운구(71)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빌린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은 이래 50여년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아왔다. 한국적 시각의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 영상을 개척했다. 글을 무섭게 잘 쓴다는 평도 듣는다. 『경주 남산』 『우연 또는 필연』 등의 사진집과 『시간의 빛』 『자연기행』 등 사진 산문집, 그리고 『강운구 사진론』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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