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진도에 호랑이 살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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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03년 전남 진도에서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호랑이 사진. 이 사진은 사단법인 한국범보전기금이 입수해 19일 공개한 『아시아와 북미에서의 수렵』에 실린 것이다.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한 전남 진도에는 호랑이에 관한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초 진도군 고군면 회동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를 피해 건너편 의신면 모도로 도망갔다. 급히 피신하느라 뽕 할머니를 남겨 놓고 왔는데, 뽕 할머니의 기도로 회동 마을과 모도 사이 바다가 갈라지는 바닷길이 생겨 돌아올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한반도 남해안 섬 지역에도 호랑이가 살았음을 확인해주는 사진기록이 발견됐다. 100년 전만 해도 호랑이가 한반도 전역에 살았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자료다.

 사단법인 한국범보전기금(대표 이항 서울대 교수)은 20세기 초반 전남 진도에서 호랑이를 포획한 기록을 담은 영국 문헌과 사진을 발굴했다고 19일 밝혔다.

범보전기금에 따르면 1915년 영국 런던에서 발간된 『아시아와 북미에서의 수렵』이라는 제목의 책 가운데 ‘만주호랑이(The Manchurian Tiger)’라는 글에는 저자 포드 바클레이(Ford G. Barclay)가 1903년 진도에서 호랑이 두 마리를 잡은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바클레이는 진도에 호랑이 네 마리가 서식하는 것을 확인하고 성숙한 암·수 호랑이를 한 마리씩 포획했다고 적었다. 그는 나머지 두 마리를 쫓아 열흘 동안 섬을 헤맸고, 결국 3주 뒤 진도에서 호랑이 두 마리의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한다. 놓친 호랑이 발자국은 해협과 본토 방향으로 갯벌에 나 있었다고 한다.

 이는 100년 전만 해도 한반도 전역에 호랑이가 서식했고, 기후와 여건이 좋은 일부 지역에서는 서식밀도가 높아 섬까지 호랑이가 진출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범보전기금은 설명했다. 헤엄을 잘 치는 호랑이가 사람이 적고 먹잇감이 많은 섬으로 헤엄쳐 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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