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여중생의 담임 직무유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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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항의 방문한 교총 9일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최근 직무유기 혐의로 교사를 입건한 것과 관련해 서울지방경찰청을 항의 방문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서울 양천경찰서가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여중생 김모(사망)양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담임교사 안모(40)씨를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하면서 그를 처벌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직무유기의 근거로 ‘교원은 학교폭력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교장 및 학교에 보고해야 한다’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대한 법률 19조, 20조 1항을 들었다. 안씨가 폭력 사실을 알면서도 상황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형법상 직무유기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안씨를 처벌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형법상 직무유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 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안씨가 당시 김양이 폭행당하고 있으며, 자살 직전 상황까지 내몰렸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면서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하다.

법원 관계자는 “안씨가 상황을 알면서도 고의로 방기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안씨가 ‘김양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하고 이 주장을 뒤집을 정황이 확보되지 않는 한 직무유기가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서울남부지검은 9일 경찰에 대해 “안씨가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은 측면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수사 지휘했다. 검찰 관계자는 “안씨를 직무유기로 기소하기 위해서는 안씨가 의식적으로 일을 포기하거나 방임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 경찰에서 말하는 대로 직무유기의 요건이 다 갖춰졌는지 볼 것”이라며 “안씨의 입장도 충분히 들을 방침”이라고 했다. 경찰은 안씨를 상대로 보강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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