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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전력공급은 장기전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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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승규
한국전력기술(주) 사장

겨울철 전력사용의 피크 시즌이라는 1월이 지나가고 있다. 올겨울 전력수급의 고비가 될 것으로 예측된 시기지만 별다른 문제 없이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있는 듯하다.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다. 겨울철 전력수급 비상기는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다. 겨울을 지나고 나서도 꽃샘추위 등 변수가 많다.

 지난해 정전사태도 여름의 절정을 지나 갑작스러운 늦더위가 찾아오는 바람에 예상치 못했던 전력사용량 증가로 일어났다. 작년 정전사태는 전국적으로 162만 가구를 비롯해 신호등·은행·병원·산업시설 등 가릴 곳 없이 돌아가며 벌어지면서 620억원 상당의 금전적 피해를 남겼다. 이로 인해 발생한 혼선과 혼란 등 간접적인 피해도 작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후 전력부족에 대한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은 큰 성과였다. 정부와 한전은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동절기 전력수급 안정을 대비해 왔다. 1981년 이후 30년 만에 연중 두 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있었던 것도 위기의식이 보이지 않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형 건물 난방온도 제한, 피크타임대 네온사인 조명 점등 금지 등 범사회적인 전기절약 캠페인도 펼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정전사태 당시 공포와 불편을 직접 겪거나 목격했던 국민 스스로가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내복 입기, 적정 실내온도 유지 등 자발적 절전노력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다방면에서 추진되고 있는 전력수급 안정책은 수요억제에 쏠려 있다. 수요조절만큼, 어쩌면 그것보다 앞서 담보되어야 할 것은 안정적인 공급이다. 우리나라 전력 예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매우 낮다. 반면 인구 1인당 전력소비량은 연간 8883㎾h로 주요 선진국들을 훌쩍 넘어선다.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전력소비 증가율을 보면 우리나라는 30.6%로 미국(1.7%), 일본(-1.9%), 영국(-5.1%) 등과 비교해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동안 수요조절과 함께 설비증설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입의존도가 높으면서 에너지 다소비 업종 중심의 산업구조에 국가경제의 의존도가 높아 수요 관리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공급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발전소 건설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당초 2024년까지 원자력발전소 등 모두 50기의 발전소를 신설해 전력생산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발전소 건설이 곳곳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신규 원전 부지 발표 후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민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송전선로 건설도 주민반대, 민원 등으로 지연되고 있다. 조력·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도 환경파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로 발전소 건설이 지연된다면 근본적 해결 없는 전력부족 문제가 매년 반복될 공산이 크다. 게다가 발전소 건설은 지금 당장 시작하더라도 수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그 와중에 전국적인 블랙아웃이라도 발생한다면 우리는 국가적 위기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전력공급은 매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늦지 않게 추진되어야 한다. 때문에 하루빨리 당면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력 관련 기업들은 안정적인 발전소 운영, 원전 안전성 강화, 친환경 기술개발 등 일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이런 노력을 통해 국민여론을 설득하는 과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한편 전력 소비자들 역시 전력수급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질 때 함께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안승규 한국전력기술(주)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