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우드·매킬로이 거느린 ‘돼지’ … 자오즈민 아들 안병훈도 픽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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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19면

리 웨스트우드가 커다란 복싱 글러브를 끼고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다. 상체가 터질 것처럼 근육이 발달한 웨스트우드와 맞설 상대는 비쩍 마른 데다 덩치도 작은 노인이다. 미국 PGA 투어 커미셔너인 팀 핀쳄이다. 웨스트우드에게는 응원군까지 있다. 링 바깥 세컨드에서 로리 매킬로이가 언제라도 링으로 뛰어들 기세로 주먹을 흔들고 있다. 매킬로이 옆엔 풍채 좋고 머리가 약간 벗어진 사나이가 미소를 띤 채 링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 골프 뒤흔드는 빅 에이전트 앤드루 챈들러

지난해 4월 미국의 한 골프잡지에 실린 일러스트레이트다. 상대적으로 하락한 미국 PGA 투어와 강해진 유럽 선수, 유럽투어 상황을 풍자해 그린 것이다. 당시 웨스트우드가 세계 랭킹 1위, 매킬로이가 2위였다. 매킬로이 옆에 서서 웨스트우드를 응원한 풍채 좋은 인물은 앤드루 챈들러다. 사람들은 그를 앤드루가 아니라 처비(chubby)라고 부른다. 돼지라는 뜻인데 그 자신이 그 이름을 좋아한다.

처비는 문제의 인물이다. 적어도 미국 PGA 투어에서는 그를 그렇게 본다. 처비는 에이전트다. 리 웨스트우드와 로리 매킬로이, 샬 슈워첼, 대런 클라크, 어니 엘스, 루이 우스트히즌 등의 매니지먼트사인 ISM의 대표다.

그는 유러피언투어 선수 출신이다. 유럽과 아시아에 애정이 많고 미국 PGA 투어가 최고 투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비는 “10년 후면 미국 PGA 투어는 아시아 투어보다 작아질 수도 있다”며 선수들을 유럽, 아시아 대회에 많이 보낸다. 웨스트우드와 매킬로이가 그랬다. 두 선수는 지난해 미국 투어를 외면했고 ‘제5의 메이저대회’라고 부르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미국에서나 메이저”라면서 함께 보이콧했다. 미국 언론은 챈들러가 배후 조종자라고 여기고 있다.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슈워첼, US오픈에서 매킬로이, 디 오픈에서 클라크가 우승했을 때 미국의 위기감은 최고조였다. ‘처비 슬램’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마지막 남은 PGA 챔피언십에서 또다시 챈들러의 선수가 우승한다면 2011년 4대 메이저대회를 챈들러의 선수가 싹쓸이하게 되는 것이다.

처비 슬램은 실현되지 못했다. 끈끈하던 처비 사단 내부에 균열도 생겼다. 문제는 여자로 비롯됐다. 매킬로이는 지난 9월 영국과 유럽 대륙의 골프 대항전에 불참하고 새 여자친구와 보냈다. 테니스 랭킹 1위 카롤린 워즈니아키다. 매킬로이는 TV를 보면서 같은 영국 선수인 웨스트우드가 아니라 덴마크인인 토바스 비욘을 응원했다. 워즈니아키가 덴마크인이다. 웨스트우드가 역전패하면서 트위터로 말싸움이 났고 지난 연말 매킬로이는 처비 사단을 떠났다.

처비 사단이 완전히 몰락한 것은 아니다. 최근 새로운 거물들이 처비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마추어 세계 랭킹 1위를 지냈고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자인 피터 율라인이 처비 사단에 합류했다. 율라인은 실력도 뛰어나지만 아버지가 타이틀리스트 사장인 윌리 율라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더 받던 선수다. 필 미켈슨처럼 미국이 사랑하는 최고의 스타로 자랄 재목으로 꼽혔다. 그가 유럽파인 처비에게 갔다는 것은 작은 충격이었다. 율라인은 올 시즌을 유럽에서 시작한다.

탁구 선수 출신인 안재형씨와 자오즈민의 아들인 안병훈도 챈들러에게 갔다. 2009년 US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자인 안병훈은 올해 유럽 2부 투어에서 뛴다. 안재형씨는 “워낙 인맥이 넓은 사람이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처비의 영향력이 본토 미국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에이전트는 IMG의 창립자인 마크 매코맥이다. 골프 선수를 잠깐 했고 아널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 게리 플레이어 등을 매니지먼트하면서 스포츠를 산업으로 키운 인물로 평가된다. 매코맥은 특히 파머와 깊은 우정을 나눴는데 그들은 평생 계약서를 쓰지 않고 활동했다고 한다. 챈들러도 웨스트우드와 계약서를 쓰지 않는 우정의 관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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