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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이 사랑받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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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

며칠 전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의 컬럼니스트가 한 정치인의 거취를 놓고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빌 켈러 뉴욕 타임스 편집인 겸 논설위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되기 위해선 부통령을 조 바이든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으로 ‘스왑(Swap, 바꿔치기)’해야 한다고 썼다. 인기가 낮은 오바마를 인기가 높은 클린턴이 이끌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자 하루 뒤 워싱턴 포스트의 조너선 케이프하트 논설위원은 “오바마-클린턴 조합은 이미 깨진 파이프”라며 불가론을 폈다.

 2012년 1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은 오바마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유력한 밋 롬니도 아니다.

올해 나이 65세, ‘세계의 외교장관’으로 불리는 힐러리 클린턴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지율이 69%로 오바마의 43%를 훌쩍 넘는다. 광(狂)팬들도 많다. 2008년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열렬 지지자가 된 스티브 로진스키란 사내는 지난주 민주당 전국위원회를 상대로 ‘탄원서’를 냈다. 지금 같은 반(反) 오바마 정서를 뚫고 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클린턴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사자인 클린턴은 오바마 1기 행정부 국무장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공·사석에서 수차례 밝혔다. 한데 그런 클린턴 측에서 지난해 말 ‘요상한’ e-메일을 지지자들에게 보낸 일이 있다. 발신인 난에는 ‘힐러리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앨리슨(Allison, Hillary Clinton for President)’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곤 “몇 개 남지 않은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포스터와 기념단추, T셔츠, 전당대회 연설 DVD를 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클린턴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가? 이 e-메일의 정체는 2008년의 대선 빚을 청산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3년 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클린턴은 세(勢)가 기울어지자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고 중도 하차했다. 그에겐 아직까지 27만4000달러(약 3억1400만원)의 빚이 남아 있다.

 그래도 이런 판촉이 가능한 건 클린턴의 높은 인기 덕분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지 3년간 그는 91개국을 방문했다. 여행거리만도 68만7000마일이다. 지구를 27바퀴 넘게 돌았다. 어제 워싱턴에 있었는가 싶었는데 오늘 보면 시리아에 가 있다. 묵묵히 미국의 외교를 위해 일하는 클린턴에게 미국인들은 열광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통령이 안 돼서 더 인기를 얻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을 보면, 권력은 잡으려 할 때보다 놓았을 때 더 쉽게 손에 잡히는 게 아닐까. 권력을 좇아 술수와 음모 속에 자신을 더럽히고 있는 정치인은 왠지 미련해 보인다. 그럴수록 정치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중들은 눈길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