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땅→ 공장부지→ 금, 부자들은 변화 읽어내는 ‘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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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경기도 일산에서 약국을 하고 있는 B씨(68세). 그가 소문난 알부자가 된 비결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혜안에 있었다. 전문가인 내가 봐도 재테크에서는 그야말로 백발백중이었다. 1969년 한남대교가 개통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한남대교가 개통되기만 한다면 강남지역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직감했다. 이런 판단이 들자 그는 부자들 특유의 행동력으로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 당시에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역삼동의 황무지나 다름없던 땅(田) 1652.89㎡(500평, 평당 3000원)에 투자했다. 그렇게 20년을 보유하다 일부 땅을 매도한 자금으로 빌딩을 신축해 부자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97년 직후 외환위기 시절, 드디어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시장금리는 천정부지로 상승하고, 특단의 부동산 부양정책을 써도 부동산 가격은 연일 폭락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계속됐다. 그러나 역시 그는 위기일수록 변화를 읽어내는 혜안이 탁월했다. 98년 봄,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환 위기만 극복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당시 매매시세의 20~30%에 경매로 넘어가는 공장부지(대지 3240㎡, 평당 15만원)를 사들였다. 결국 공장부지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10배가 넘는 가격에 수용됐다.

현재 그는 수백억원대 알부자며, 실물자산 투자의 신봉자다. 2010년에는 실물자산인 금(金)에도 3억5000만원 정도를 투자해 30% 정도의 수익을 실현했다. 온스당 1000달러를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금에 투자할 때도 날카로운 판단력이 돋보였다. 그는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여기에 각종 산업소재 부품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B씨는 금의 매장량은 한정돼 있지만,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계속 늘어 투자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가 부자로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읽어내고, 돈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본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부자들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본능적으로 투자의 기회를 감지한다. 특히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자산 투자에는 도사에 이른 사람들이다. 40년 전 제대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마땅치 않던 시절, 어느 누가 2011년의 대한민국 서울의 강남을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수년 동안 해외여행에 몰입한 것도 흥청망청 쓰기 위함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체감하기 위해서였다.

부자들은 위기를 성공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외환위기 시절에 부자들은 부동산을 마음껏 골라 투자했다. 그러나 부동산 하수는 시대의 흐름을 느끼지 못해 투자엔 항상 뒷북만을 친다. 부동산 가격이 끝도 없이 추락하던 외환위기 시절에는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을 염려해 오히려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헐값에 팔아 치운 사람이 수두룩하다.

중국 전한(前漢) 때 회남왕이었던 유안(劉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바야흐로 한 해가 저물어감을 알고,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의 추위를 안다. 그렇다.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고, 항아리의 물이 어는 것을 보고 세상의 추위를 알 수 있는 세상의 이치, 즉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지혜를 얘기하고 있다.

그리스의 피로스(Pyrrhos) 왕은 로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패배나 다름없는 승리였다.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지만 대신 거의 모든 병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최후의 전투에서는 패망하고 말았다. 결국 실속 없는 승리,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내가 만난 많은 부자의 이면에도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에 도취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은 물론이고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부동산 정책을 비롯해 조세정책, 돈의 흐름, 시장금리, 전세시장 동향 등을 통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실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지 마라. 시대의 변화를 읽는 데 온 힘을 다해라.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에 앞서 나가며, 매사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부자들은 절대로 한두 번의 성공에 도취되지 않으며,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등장한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부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핑계에 파묻혀 미래를 보지 못한다. 기억하라. 수십 년 전, 도도히 흐르는 한강의 물살을 보며 한강 주변 땅값의 변화를 읽어낸 사람과 읽어내지 못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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