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개그도 거침없다 ‘조승우표 조로’니까

중앙선데이

입력

조로의 마술쇼가 한창이다. 조승우 출연만으로도 화제 만발한 올겨울 뮤지컬계 최고의 기대작 ‘조로(2012년 1월 15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얘기다. 박건형, 김준현과의 트리플 캐스팅이지만 대중의 관심은 온통 조승우의 변신을 향해 있다.뮤지컬 ‘조로’는 2008년 영국 런던의 웨스트사이드 초연 당시 8개월 동안 31만 명 관람, 1100만 파운드의 판매고를 올린 블록버스터 뮤지컬이다. 지금까지 파리, 일본, 모스크바 등지에서 공연했고 내년까지 상하이, 뉴욕, 베를린, 밀라노 등 수많은 세계 주요 도시 공연이 예정돼 있다.

‘화려한 검술과 아찔한 와이어 액션, 실제 화염이 동원된 불쇼’. 화려한 수식은 액션과 무대장치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리지만 퍼포먼스는 ‘스펙터클’을 논하기엔 2% 부족했다. 극의 흐름은 복선이나 반전 등의 장치 없이 간단명료해 드라마의 긴장감은 찾기 힘들었다. 조로가 가면을 벗지 않는 이유와 악역 라몬의 불행한 사연을 엮어 러브라인에 필연성을 부여하려 했지만 객석에 전달될 만큼의 호소력은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조승우는 이 작품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다. ‘어떤 위기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재치와 호방함을 갖춘 섹시하고 로맨틱한’ 조로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된 연기는 조승우가 조로가 된 건지, 조로가 조승우화한 건지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개콘’급 유머로 관객과 호흡을 함께 가져가는 영리함. 모든 군더더기를 뛰어넘어 자신의 존재감과 작품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히 각인시켰다.

‘영화 같은’ ‘박진감 넘치는’ 등의 현란한 수사를 걷어낸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아낌없이 망가지는 조승우의 개그,그리고 마술과 군무가 교차하는 버라이어티쇼다. 수퍼히어로도 스트레칭을 하다 보면 뒷다리가 당기고,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허둥대며 실수를 연발한다는 휴머니티 넘치는 몸 개그로 그는 객석에 성큼 다가왔다.

교묘한 마술적 장치는 속도감과 박진감이 떨어지는 줄타기와 칼싸움을 대신해 조로의 신출귀몰한 액션을 상당부분 커버해 주었다. 집시 디에고와 검객 조로를 오가는 변신코드에 마술쇼는 탁월한 선택이다. 줄타기로 등장했다 마술로 퇴장한 조로가 다시 마술처럼 순식간에 디에고로 변신해 재등장하는 것은 스턴트 조로의 활용에 얼마간 설득력을 부여했다.

어설픈 액션보다 탄탄한 군무야말로 이 쇼 무대의 비주얼 담당이다. 대극장 뮤지컬에 앙상블의 군무는 필수지만 집시들의 절도 있는 군무는 극 전체의 무게중심을 잡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기쁨과 괴로움, 분노와 반발 등 감정의 흐름이 탭댄스로 음향효과까지 더한 힘있는 군무로 극의 요소요소마다 효과적으로 표현됐다. 전작‘지킬 앤 하이드’에서 솔로곡으로 독보적 존재감을 피력했던 조승우가 앙상블과 동화돼 쇼를 리드하는 모습 또한 볼거리다.

조승우의 코미디에 환호하고 압도적인 군무와 마술쇼에 감탄하고 놀라다 보니 1막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2막은 불쇼와 앙상블의 몽환적 합창, 조로와 병사들의 군무가 어우러진 환상적 오프닝으로 드라마 전개에 속도를 더했지만, 조역의 러브라인과 악역의 고뇌가 필요 이상으로 끼어들어 속도감이 떨어졌다. 조로의 등장은 눈에 띄게 줄어 수퍼히어로를 기다리는 객석을 목마르게 했다.

간간이 검술신에 모습을 비칠 때도 ‘또 스턴트 조로 아냐?’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선천적인 운동신경이 디테일을 좌우하는 액션신에서조차 배우의 매력을 극대화해 보여줄 연출의 묘가 아쉽다면 욕심일까. 우리는 ‘진짜 조로’를 원하니까.

조로는 누구?
조로는 1919년 미국 작가 존스턴 매컬리가 발표한 소설'카피스트라노의 저주'의 주인공으로 처음 등장했다. 스페인 식민지 캘리포니아에 사는 귀족 돈 디에고 드 라 베가의 가명. 검은색 망토에 가면을 쓰고 독재자와 악당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영웅 캐릭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