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병’에 걸린 우리 어머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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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호 27면

어머니가 발을 다치셨단다. 부랴부랴 달려갔다. 상태가 무척이나 안 좋았다. 엄지발가락이 달랑달랑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상황이었다. 발을 못 쓰는 어머니는 엉덩이로 방을 쓸고 다니셨다. 돌을 옮기다 다치셨다고 했다. 기막혔다.

삶과 믿음

큰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은 우리에게 “바쁜데 이렇게 와 줘서 감사하다”고 하신다. 좀 어떠시냐고 물었다. 어머니의 첫마디는 이랬다.
“생각해 봐라. 너희 아버지가 안 다치고 내가 다친 것이 감사하다.” (하긴 성질이 그렇고 그런 늬 애비가 다쳤어 봐라. 에미가 견뎌내겠냐. 그래도 내가 다쳐버린 게 낫지,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또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발등 안 찍히고 발가락 찍힌 것이 감사하다.” (그럼요. 발등이라도 찍혔으면 어떻게 하게요.) 자기위안 정도로 해석했다. 한두 마디 인사치레로만 여겼던 말씀은 계속되었다. “다치고 가만 생각하니 감사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더라. 생각해 봐라. 발가락 다섯이 다 다쳤으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꼭 세 개만 다친 것이 감사하지. 더구나 힘 있는 오른발이 아닌 왼발 다친 것이 얼마나 감사하냐. 다쳐도 생활할 수 있도록만 다쳐 자식들 수발들지 않게 한 것도 감사하고 그래서 너희들 안 불렀다.”

‘이럴 때 알려주어야 불효를 안 할 것 아닙니까. 더구나 다친 어른들 돌아보지도 않는다고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흉을 보겠어요’라고 불평스럽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어머니의 말에 놀라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 일로 놀라운 신앙 체험을 했다고 한다. 고통이 얼마나 심하던지 끙끙 앓으며 울고 싶은 밤, 아버지 잠 깨울까 봐 속울음을 울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다섯 손가락이 어머니의 발가락을 붙잡더라는 거다. “딸아, 네 고통 안단다” 그러면서 꼭 싸매어 주는데 그렇게 따뜻하고 편안하더란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진통제를 먹고도 이겨내기 힘들던 그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이렇게 놀라운 방법으로 치유의 손길을 체험하게 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말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천사의 얼굴 같았다. 어머니의 감사는 끝도 없었다.
곁에 앉아 있던 아들 녀석이 “할머니 상 타셨네요” 했다. 그러고 봤더니 ‘성경읽기 상’이라고 새긴 거울이 걸려 있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말한다.

“그래 말이다. 성경을 더 많이 읽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못 읽었어. 다치고 나니 모자라던 기도 생활과 성경 읽기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버님이 핀잔을 했다. “너희 엄마가 살이 쪄서 동작이 둔하니까 사고를 내지. 한 5센티만 발을 얼른 움직였어도 저런 일 안 당할 건데. 돌이 떨어지면 얼른 발을 빼야지. 괜히 다쳐 가지고 바쁜 아이들 오게 만들고….”

어머니가 즉시 그 말을 받았다. “이래서 우리 귀여운 손자들도 보고 얼마나 감사해요. 안 그러냐? 옛날 같았으면 느그 애비가 날 놀린다고 또 마음 상할 건데 저래도 내 마음이 끄떡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어머니는 병에 걸려도 단단히 병에 걸리셨다. ‘감사 병’ 어머니의 감사는 또 있었다. “더운 여름날 다치지 않고 겨울날 다쳐 감사, 병원 신세 지지 않아 감사, 차도가 있어 감사….”

성경은 이른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어느새 추수감사절기다. 추수감사절 파티나 만찬의 상징이 되어버린 ‘칠면조’는 뭐라고 감사하면서 죽어갈까.



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로 일하고 있다. 트위터(@happyzzone)와 페이스북으로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지향하는 문화 리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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