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 3주년] 환란후 우리경제 '축소판'

중앙일보

입력

1997년 말 외환위기의 신호탄이었던 기아 사태가 발생한 지 지난 15일로 3년이 지났다.

기아차는 그동안 법정관리.김선홍(金善弘)전 회장의 구속, 현대차의 인수, 카렌스 등의 돌풍, 법정관리 해지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80년대 봉고 신화에 이은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다.

이같은 기아차의 몰락과 회생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한국 경제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경영 혼돈기(부도유예협약 체결~현대 낙찰 전)〓97년 7월 채권단과 부도유예 협약을 맺은 기아차 처리 문제를 놓고 김선홍 전 회장 등 기아측과 강경식(姜慶植)전 재정경제원 장관 등 정부가 논란을 벌였다.

정부는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는 金전회장 등을 바꾸고 제3자에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아는 3자 매각은 기아를 인수하려는 삼성의 음모라며 독자 회생론으로 맞섰다.

기아는 자동차 산업의 과잉 설비가 예상되는 데도 삼성차의 진입을 허가한 정부의 책임론도 제기했다.

결국 기아차는 1년 뒤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외자유치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면서 국제 경쟁입찰로 처리 방안이 확정됐다.

미국 포드.현대차 등이 경합했으며, 세차례 입찰 끝에 98년 12월 현대차가 기아를 인수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당시 유력한 후보였던 포드는 최근 대우차 입찰 참여 때와는 달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고 말했다.

이 사이 김선홍 전 회장은 갚을 능력이 없는 계열사에 지급보증을 해준 혐의(배임 등)로 구속됐으며, 환란 청문회에 불려나갔다.

◇ 회생기(현대 낙찰~법정관리 해지)〓현대차로 넘어간 기아차는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기아차.아시아자동차 등 완성차 제조.판매 5개사를 통합해 몸집을 줄였다. 4만4천명이던 직원을 3만1백명으로 줄였고 인력을 재배치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구조조정에 따른 비용절감액이 1조원 정도" 라고 말했다.

강성 노조로 알려졌던 종업원들이 크게 달라졌다. 노조는 99년 3월 무분규를 선언했다.

'기아 문제는 기아인의 손으로' 라는 슬로건 아래 직원들은 하루 3교대 철야근무, 휴일 특근, 점심시간 30분 단축 등으로 80만대 생산목표를 달성했다. 기아차 화성 공장 등 가동률이 90%를 넘는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아차를 인수한 뒤 노조의 움직임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면서 "막상 경영에 들어가니 법정관리 등을 거치며 노조가 상당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고 말했다.

98년 말부터 잇따라 내놓은 카렌스.카스타.카니발 등 '카 3총사' 가 인기를 끌었다.

IMF 한파 이후 연료비를 절약하려는 소비자의 욕구와 레저용 밴(RV)의 인기가 맞물려 지난해 15만대가 팔렸다.

그 결과 비슷한 시기에 무너진 한보철강.한라중공업 등이 여전히 법정관리나 위탁경영 상태인데 비해 기아차는 지난해 흑자로 전환했고 올 초 법정관리를 벗었다.

◇ 제2 도약기(법정관리 해지 후)〓지난해 RV 차량으로 바람을 일으킨 데 이어 올 들어 소형차 리오(1월), 준중형차 스펙트라(5월), 중형 옵티마(7월)를 잇따라 출시했다.

지난 2월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합작법인에 대한 투자를 늘렸으며, 오는 9월에는 그동안 중단했던 인도네시아 국민차 사업을 재개할 계획이다.

◇ 평가와 교훈〓법정관리 중 기아차 회장을 맡은 진념(陳稔)기획예산처 장관은 "법정관리 등 결정이 늦어져 경제에 부담을 주었다" 면서 "종업원지주제를 가장 먼저 실시하는 등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모델기업이었는데 내부 변신이 늦어 위기를 맞았다" 고 말했다.

97년 당시 자동차산업 담당 과장이었던 이재훈(李載薰)산자부 산업정책국장은 "회사의 경영 주체가 바뀌자 직원들이 스스로 경영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라며 "최근 도덕적 해이에 빠진 몇몇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기업을 볼 때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어떤 일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 라고 평가했다.

김진국 건양대 교수는 "최근 현대차가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전략적으로 제휴한 데서 보여주듯 현대.기아차가 합침으로써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재편 과정에서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위상이 높아졌다" 고 평가한 뒤 "그러나 현대.기아차가 독과점 체제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 지적했다.

기아차 주변에선 현대차의 역할이 컸지만 법정관리 1년여 만에 기아차가 회생한 것은 당시 기아차가 준비한 RV 차량이 인기를 끈 게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 부장은 "기아차는 미래 시장을 내다보고 카렌스 등을 준비한 저력이 있는 기업" 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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