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단 거부 땐 시리아 제재 … 66년 만에 칼 뺀 아랍연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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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동과 아프리카의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Arab League)이 24일 오후(현지시간) 시리아에 “24시간 안에 민간인 보호를 위한 (인권) 감시단을 수용하지 않으면 경제제재를 단행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동안 큰 존재감이 없었던 아랍연맹이 회원국에 이런 강수를 들이댄 것은 66년 역사상 처음이다.

 아랍연맹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이날 이집트 카이로에서 긴급회의를 연 뒤 “시리아에 25일 오후 카이로에 와서 합의문에 서명하라고 초청했다”며 “시리아가 이를 거부할 경우 26일 아랍연맹 재무장관들이 모여 시리아에 대한 경제 제재안을 놓고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들은 또 처음으로 유엔에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아랍연맹의 시리아에 대한 요구안은 민간인과 군인으로 이뤄진 인권 감시단 500명을 받아들이고, 민간인 살상을 자행하는 군사력을 모두 철수시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엔이 이달 초 집계한 사망자 수는 최소 3500명이다.

 아랍연맹이 검토 중인 경제 제재에는 ▶시리아행 비행기 운항 중단 ▶생필품을 제외한 무역 단절 ▶시리아 중앙은행과의 거래 금지 ▶시리아 정부의 해외 자산 동결 ▶시리아 정부 관리들의 여행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시리아는 이미 유럽연합(EU)과 미국으로부터 석유 및 관련 제품의 금수조치를 비롯한 제재를 받고 있다.

 시리아는 아랍연맹의 최후통첩에 강력 반발했다. 시리아 관영 사나통신은 25일 “아랍리그가 중동을 어지럽히는 서구의 내정 간섭도구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아랍연맹이 실제 제재에 나설 경우 시리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란 목소리가 많다. 시리아가 아랍 국가들에 수출의 절반, 수입의 4분의1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NYT)는 “시리아 정부 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석유 수출과 관광산업이 현재 사실상 정지된 상태”라며 “아랍연맹의 경제 제재는 이미 망가진 시리아 경제에 ‘뼈 아픈 한 방’을 날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 저널(WSJ)도 한때 시리아 정부의 자문역을 맡았던 경제학자 사미르 사이판을 인용해 “제재 자체로는 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겠지만, 이로 인해 알아사드 정부가 혼란과 배고픔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퍼지면 정권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아랍연맹의 경제 제재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레바논은 아랍연맹의 경제 제재 투표 때 반대나 기권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WSJ는 “아랍연맹에는 강제 제재의 틀 자체가 없다”며 “시리아 정부가 민간인의 계좌를 금융거래에 이용하는 만큼 계좌 및 자산 추적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종이 호랑이’라는 인식이 강한 아랍연맹의 대시리아 강경조치는 아랍권 지도자들이 ‘재스민 혁명’으로 국민의 요구에 새롭게 눈을 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아랍연맹이 올 들어 평소답지 않게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랍의 봄’으로 아랍권이 새로운 방향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민 위에 군림하던 지도자들이 이제 국민의 감성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동의 화약고’가 될 우려가 있는 시리아에 섣불리 개입할 수 없는 국제사회도 아랍연맹이 사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날 시리아에서는 반정부 시위대 10여 명을 포함해 50여 명이 추가로 숨졌다고 인권 활동가들이 전했다.

유지혜 기자

◆아랍연맹(Arab League)=아프리카 북부 및 동북부, 서남아에 자리잡고 있는 아랍 22개국으로 구성된 지역 협의체. 1945년 3월 이집트·이라크·요르단·레바논·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의 6개국이 창립했으며, 이후 회원국이 확대됐다. 우호 관계 형성과 협력사업 수행 등을 통해 아랍권의 주권과 독립을 수호하는 방패막이 되자는 것이 연맹의 정신이다. 전문위원회 활동을 통해 경제·커뮤니케이션·문화·사회문제 등에 대한 협력을 꾀하고 있으며, 아랍권의 분쟁 조정 역할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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