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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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오늘은 아프리카 이야기다. 방송 다큐멘터리들은 빅토리아 호수의 나일 퍼치(민물 농어)를 단골로 비난한다. 사람 크기만 한 외래종이 토종 물고기를 멸종시켰다. 가난한 어부들이 잡은 나일 퍼치는 유럽 백인들이 즐기는 사치스러운 생선이다. 빈부격차와 흑백갈등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러시아산 일류신 비행기가 무기를 밀반입한 뒤 나일 퍼치를 싣고 유럽으로 향하는 장면은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불편하다. 알고 보면 나일 퍼치의 최대 수출회사가 바로 한국계 기업이기 때문이다.

 때는 르완다 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투족과 투치족이 서로 수십만 명을 학살해 빅토리아 호수에 던졌다. 나일 퍼치가 희생자의 시체를 뜯어먹었다는 뜬소문 때문에 사달이 났다. 유럽이 살모넬라균을 트집 잡아 금수(禁輸)조치를 내렸다. 전체 수출의 25%인 나일 퍼치의 판로가 막히자 가난한 어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때 현지에 나가있던 김성환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커다란 냉동 창고를 짓고 싼값이나마 나일 퍼치를 모두 사들여준 것이다. 얼마 뒤 금수조치가 해제되면서 그는 냉동 나일 퍼치로 큰돈을 벌었다. 김 회장의 환성은 동(東)아프리카 굴지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도 눈여겨볼 인물이다. 그는 새벽마다 빗자루를 들고 대통령궁 주변을 청소한다. 스스로 “아프리카의 새마을 운동”이라 한다. 반군 총사령관 출신의 그는 광장에서 죄를 고백하면 용서하는 ‘가차차’(잔디가 깔린 마당) 제도로 화해를 주도했다. 나이로비 무역관장을 지낸 나창엽 KOTRA 실장은 “르완다는 이런 리더십을 바탕으로 거리에 거지나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육지로 둘러싸인 르완다가 매년 7%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어가는 비결이다. 카가메는 오명 전(前) 장관을 초청해 정보기술(IT)을 배우는 데도 열심이다.

 우리는 경제가 어려우면 외부에서 돌파구를 찾곤 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중동 건설 붐으로 넘겼고, 80년대엔 3저(低) 호기가 찾아왔다. 그 후 중국 특수(特需)를 우리만큼 제대로 누린 나라는 없다. 요즘의 청년 실업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치인이 휘황찬란한 청사진을 약속해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매년 60만 명의 대졸자가 쏟아지는데 국내에서 창출되는 양질의 일자리는 22만 개에 불과하다. 해마다 삼성전자를 하나씩 탄생시켜도 풀기 어렵다.

 아프리카는 마지막 남은 희망의 땅이다. 10억 명인 인구는 향후 40년간 갑절로 늘어난다. 40세 이하가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젊은 시장이다. 그곳을 타잔과 ‘라이언 킹’의 고향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동남부 아프리카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대부분 고원에 위치해 날씨와 자연환경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KOTRA 나 실장은 “솔직히 한반도와 바꾸고 싶을 만큼 부러운 땅”이라 했다. 그런 아프리카가 “이제 원조보다 기술을 가르쳐 달라”며 스스로 깨어나는 중이다.

 돈이 없어 엄두를 못 낸다고? 글쎄…. 한국은 자본 수입국에서 자본 수출국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300조원을 돌파한 국민연금은 향후 10년 안에 1000조원까지 쌓인다. 그렇다고 외국 주식이나 빌딩만 살 수 없는 노릇이다. 최근 국민연금은 동원그룹과 손잡고 아프리카 세네갈의 수산업체를 인수했다. 눈치 빠른 삼성·LG·포스코도 곳곳에 선발대를 보내고 있다.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현지 사정에 밝고 해당 비즈니스에 정통한 전문가라면 우리는 언제든 손잡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2030세대의 분노에 떨고 있다. 내부적으로 그들의 꿈을 채워주기엔 한계가 있다. 다시 한번 바깥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해외 진출에 국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2030세대도 촛불시위와 ‘콘서트’, 트위터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닌 듯싶다. 그곳에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답은 없다. 한번쯤 지구본에 눈길을 돌렸으면 한다. 오늘 따라 유난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하루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