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한국을 디딤돌로, 세계로 가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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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정선언
경제부문 기자

올해 3월 롯데백화점 측과 마주앉은 중국 여성복 브랜드 마리스프롤그 주충윈(朱崇<607D>·47) 대표는 이렇게 물었다. “톈진점에 들어가면, 서울 본점에 자리를 줄 수 있나요?”

 롯데백화점은 6월 중국 2호점인 톈진점 개점을 앞두고 입점 업체들을 만나는 중이었다. 중국 의류 브랜드가 국내 진출한 경우는 전무한 상황. 롯데 측은 “현지 업계 1위라고 하지만 중국 고유 브랜드로 한국 패션시장에 진출하겠다니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롯데에 마리스프롤그는 톈진점에 꼭 있어야 할 브랜드였다. 본사 글로벌MD팀 직원들이 ‘본점에서 팔아도 될지’ 직접 보기로 했다. 공장 실사에 참여한 조규장(35) 과장은 “대표가 이탈리아 유학파 디자이너 출신이라 유럽풍 디자인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중국인 체형에 맞추다 보니 큰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사팀 의견을 들은 주 대표는 “한국 매장에만 들어가는 디자인을 따로 제작하겠다”고 했다. 롯데 측도 한걸음 물러섰다.

 5월 양측은 “중국 톈진점과 서울 본점에 입점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했다. 주 대표가 바빠진 건 그 뒤부터였다. 매장은 하나뿐이지만 한국법인에 주재원까지 뒀다. 10여 명의 임원과 두 차례 방한하는가 하면 한국 의류업체의 마케팅 방식도 벤치마킹해 개점 행사에 탤런트까지 섭외했다. 그 결과 지난 16일 중국 의류 브랜드 최초의 한국 매장이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3층에 문을 열었다.

 조규장 과장은 “중국 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실감했다”고 말한다. 대다수 중국 기업은 본사와 공장을 모두 가지고 있다. 품질 경쟁력만 갖추면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조 과장은 “중국 기업이 지금까진 글로벌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것에 만족했지만 이젠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세계 시장을 직접 노리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조8800억 달러. 2위였던 일본(5조4700억 달러)을 추월했다. 국가 경제가 크는 만큼 기업의 성장세도 무섭다. 롯데 측은 “주 대표는 마리스프롤그를 아시아 톱 브랜드로 키우고 싶어 한다. 한국을 그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기업이 미국·일본 기업이 아닌, 중국 기업과 진검 승부를 펼쳐야 할 날도 멀지 않았다.

정선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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