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살림 빠듯 저소득층 … 엥겔계수 7년 만에 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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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가난할 때는 먹고사는 게 우선이다. 살림이 피면 그제야 옷도 사고 책도 산다. 이 원리를 숫자로 나타낸 게 ‘엥겔계수’다. 먹는 데 쓴 돈의 비중을 따져보면 살림살이가 보인다는 논리다. 엥겔계수를 따져보니 서민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 소득 하위 20% 서민이 먹는 데 쓴 돈이 늘었다. 통계청의 3분기 가계동향을 분석한 결과다.

 올 3분기에 소득 하위 20% 가구가 쓴 돈(소비 지출)은 122만3200원. 번 돈(120만9100원)보다 많다. 이 중 식료품과 비주류음료에 나간 돈이 27만9400만원. ‘소비지출에서 식료품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인 엥겔계수가 22.8%인 셈이다. 2004년 3분기(24.4%) 이후 7년 만에 최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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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엥겔계수가 높아졌을까. 물가 때문이다. 통계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를 살펴보면 지난달 식품 부문의 물가지수는 126.9다. 2005년을 기준(100)으로 5년 사이 식품 물가가 26.9% 오른 것이다. 지난달 신선식품 지수는 132.7에 달한다. 이렇게 식료품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니 서민이 먹는 데 쓴 돈이 그만큼 늘어난 거다.

 전체 가구의 엥겔계수도 3분기에 15.0%로 3년 사이 가장 높았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던 2008년 3분기(15.1%) 이후 최대치다. 실제로 3분기 전체 가구의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늘었다. 곡물(12.5%)과 소금·고춧가루 등 조미식품(65.1%)에 쓴 돈이 특히 많이 늘었다.

 식료품 사는 데 돈을 많이 쓰다 보니 지출을 줄이는 부분도 생기게 마련이다. 소득 하위 20% 가구는 술·담배(-2.6%)와 교통비(-1.4%), 오락·문화비(-5.8%)를 줄였다. 기획재정부 윤인대 사회정책과장은 “지난 2, 3년 사이의 먹을거리 물가의 상승으로 엥겔계수가 올라간 건 사실”이라며 “최근 식료품 가격이 꺾이는 추세라 조만간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널뛰는 식료품 물가를 감안할 때 장기적인 빈곤층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윤창현 교수는 “최근의 물가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소득 하위계층이라는 것이 통계로 나타난 것”이라며 “식료품 가격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엔 저소득층에게만 선별적으로 식료품 구입 쿠폰을 나눠 주는 미국의 푸드 스탬프(Food Stamp) 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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